“부장 직함 대신 ‘金프로’라고 불러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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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밸리 입주기업 씨애치씨랩… 직급별 호칭 없애 수평적 관계 유도
사내외 반응 좋고 업무 능률도 향상

대전 대덕테크노밸리 1호 입주기업인 ㈜씨애치씨랩(대표 차형철·왼쪽에서 네 번째) 직원들은 지난해 말부터 ‘프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대전 대덕테크노밸리 1호 입주기업인 ㈜씨애치씨랩(대표 차형철·왼쪽에서 네 번째) 직원들은 지난해 말부터 ‘프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김 프로, e메일 보냈나요?”, “네, 박 프로님, 답변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전 유성구 대덕테크노밸리 1호 입주기업인 ㈜씨애치씨랩(대표 차형철) 직원들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호칭은 모두 ‘프로’다. 사무실은 물론 생산 현장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지난해 대리나 과장 차장 부장 등의 직급별 호칭을 없앴다. 차 대표는 “직원 상호 간 수직적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로 설정하고 ‘프로답게 일하자’라는 취지에서 ‘프로’라는 호칭을 합의해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차 대표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분명 다르다. 돈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 이외에 일에 대한 열정과 욕망, 그리고 결과물까지 다르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프로답게 일하고 프로답게 성과를 얻자’는 의미다.

새로운 호칭 도입 후 사무실 분위기는 물론 외부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 전략기획팀 김진실 프로(35·여)는 “차장, 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 있던 거리감과 부담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후배 직원을 은연중 무시하거나 가볍게 대하는 풍조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회사가 이 같은 호칭을 도입한 것은 그동안 지켜온 특유의 사내 분위기 덕분이기도 하다. 차 대표는 지난해 12월 정부로부터 기업인으로서는 최고 영예인 ‘금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차 대표는 벤처기업 자체가 낯설던 1996년 대덕테크노밸리에 회사를 설립했다. 국내에서는 전문 생산 시설이 구축되지 않은 실험실용 작업대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꾸준한 연구와 투자 끝에 국내의 새로운 실험실 장비 시장을 개척하고 지금은 실험대 및 후드, 바이오 장비 제조 분야 기술 개발에 힘쓰며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차 대표가 더욱 관심을 둔 것은 직원 100여 명의 복지였다. 웬만한 중견기업은 쉽지 않은 직원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기금 확충은 물론이고 장학금, 자기 개발비 등을 지원한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위해 곳곳의 사회복지법인, 소외마을 등을 다니며 다양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지역 출신 인재들을 수시로 채용해 대전시로부터 고용 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차 대표 스스로는 고액 기부자 모임인 대전아너소사이어티 48호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역민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를 위해 개인 오피스텔을 갤러리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차 대표의 이 같은 의식과 회사 운영 방침은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스며들었다.

한 중견 간부는 “한참 후배를 ‘프로’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내가 ‘프로’라는 호칭으로 불릴 때 어색함보다는 더 젊어지는 느낌이었다”며 웃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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