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제충만]결혼 1년, 압박이 들어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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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다. 슬슬 압박이 들어온다. ‘별 소식 없지?’ ‘어제 꿈을 꿨는데…’ 등 임신과 관련된 질문이다. “좀 기다려요. 천천히 할게요”라고 답하면 “그래 뭐 급할 건 없지”라고 말했다가도 이내 왜 아이를 하루라도 젊을 때 낳아야 하는지 일장연설이 이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결혼을 하면 바로 딸 둘에 아들 하나인 삼남매를 낳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낳긴 낳아야지’, ‘낳아도 될까’, ‘안 낳아도 좋을 거 같다’로 점차 변해간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000명 중 5명 정도만 결혼을 했고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40만 명도 채 안 된다고 한다.

출산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마다 너무 다양하다. 내 상황만 놓고 보면 어찌어찌 해서 결혼까지는 했는데 아이를 낳자니 희망이 안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절반의 긍정이고, 아이를 낳는 것은 최대의 긍정이라고.

사실 어떻게 보면 이건 산업재해에 가깝다. 대한민국 아이들의 권리에 관한 일을 5년 넘게 하다 보니 온갖 아동 잔혹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떨 때는 아이한테 미안하겠구나 싶다. 내가 일하는 기관의 이름처럼 아이들을 구해야 하는데 내 아이의 행복조차 제대로 구해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마음을 꺾는다.

일하며 만난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집밥을 좀 먹게 해달라거나 시간을 멈추는 기계가 있어야 놀 수 있다며 공부하는 최대 시간을 법으로 정해 달라는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중학생부터는 생활기록부에 잘 기록되기 위해 ‘생활기록부 인생’을 산다고 한다. 학교 화장실이 가장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곳이었다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커녕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부모한테 맞아 죽기도 하고, 삶을 포기한 부모가 자녀를 죽이기도 한다.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은 혼자 일하다가 차가운 기계에 깔리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동네 유치원 아이를 이웃집 아저씨가 성폭행했다. 아이들이 행복할 수가 있을까. 한국은 아동의 주관적인 행복에 관한 각종 조사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어떤 뾰족한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아이만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덮어놓고 낳자고 할 수 있을까.

정부는 그동안 200조 원을 쏟아부으며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심각한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예산은 여전히 부족하며, 그나마도 정부의 일반예산이 아니라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 할당된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아이의 죽음을 왜 막지 못했는지 밝혀야 하는데 정부 차원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진 적이 없다. 2016년까지 만들기로 약속한 국가아동놀이정책은 2018년 현재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아이들이 얼마나 놀지 못하는 상황인지, 놀이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한 실태조사는 없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일자리는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반드시 인구가 지금처럼 많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노인인구 부양이라는 국가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출산으로 애국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지금 행복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그 아이들 중 내 아이도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는 것, 그게 저출산 대책의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출산하지 않는 이유#노인인구 부양#저출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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