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연 “농아인 야구 드림팀, 희망의 홈런 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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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대회 국내개최 조일연 협회장
아이들 세상과 겨룰 힘 키워주려 2002년 성심학교에 야구단 만들어
세계대회 유치 10년간 노력 결실… 마지막 목표는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대한농아인야구협회장인 조일연 전 충주 성심학교장(왼쪽 사진)은 농아인 야구 불모지인 한국에서 내년 세계농아인야구대회 개최를 이끌었다. 2004년 충주 성심학교 농아인 야구단 선수들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동아일보DB·조일연 씨 제공
대한농아인야구협회장인 조일연 전 충주 성심학교장(왼쪽 사진)은 농아인 야구 불모지인 한국에서 내년 세계농아인야구대회 개최를 이끌었다. 2004년 충주 성심학교 농아인 야구단 선수들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동아일보DB·조일연 씨 제공
내년 10월 한국에서 사상 첫 세계농아인야구대회가 열린다. 타격 소리와 함성소리도 들리지 않는 ‘소리 없는’ 야구대회에 13개국 400여 명이 참가한다. 국제농아인체육연맹(ICSD)으로부터 이번 대회 개최를 이끌어낸 사람은 바로 대한농아인야구협회장인 조일연 전 충주 성심학교장(64)이다.

2002년 창단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단은 영화 ‘글러브’(2011년)의 모델이 된 한국 최초 농아인(청각장애인) 야구단이다. 2003년 전국고교야구대회 첫 출전 이후 아직도 1승을 이루지 못했다. 야구단 창설을 주도하고 선수들을 가르쳤던 조 회장은 “일본 대만 등에서 ‘농아인이 야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사례를 찾아 공부했다”며 “야구를 통해 농아인도 세상과 당당히 겨룰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장애인과 달리 농아인은 평균 학업 성취도가 초등 저학년 수준에 머무는 ‘열 살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음성 정보가 입력되지 않아 문장 구성력과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지다 보니 또래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야구는 다르다. 장애인 중 오직 농아인만이 정식 야구를 할 수 있다. 청력을 잃은 대신 발달하는 시각을 통한 모방력, 지각력 등 보상 감각이 무기가 된다. 투구 자세를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894년 국내 최초의 농아인 학교인 평양 맹학교가 설립된 후 120여 년이 지났지만 농아인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은 이뤄지지 못했다”며 “농아인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건 특수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2007년 성심학교를 그만두고 대한농아인야구협회를 만들어 10년간 세계농아인야구대회 개최를 위한 집념 어린 도전을 해온 이유다.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농아인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희망을 찾았다. 하지만 졸업 이후 선수로 활약할 수도, 야구를 계속할 여건도 마련되지 않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당시 ‘홈런 타자’로 이름을 날리던 장왕근 선수(31)는 여러 팀을 전전하다 현재는 호떡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대한농아인야구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성심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은 세계농아인야구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야구로 희망을 이룰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성심학교 선수들, 농아인 사회인야구단, 고교 야구단의 농아인 선수들을 모아 기적을 일으켜 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세계농아인야구대회에는 청각 손실도 55dB(데시벨) 이상(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운 수준)의 만 16세 이상 청각장애인이 참여한다. 아직 개최 도시와 후원 기업은 결정되지 않았다. 조 회장의 최종 목표는 야구가 ‘데플림픽’(농아인 올림픽·DEAFLYMPICS)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정하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정부의 선수 지원 및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현재를 함부로 살게 됩니다. 말썽쟁이였던 학생들이 야구를 시작한 뒤 삶 자체가 달라지더군요. 농아인들이 야구대회만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조일연#농아인 야구#세계농아인야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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