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비우면 비로소…’ 최인호가 전하는 행복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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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들/최인호 지음/100쪽·1만2000원·책읽는섬

저자의 5주기인 올해, 포근하고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동화 같은 작품을 만났다. 1981년 ‘문학사상’에 연재했던 연작소설 3개를 묶어 냈다.

오직 집 한 채를 가지길 소망하는 이(‘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높이 뛰어올라 사라져 버리려는 높이뛰기 선수(‘포플러나무’), 갑자기 말을 하지 않는 남성(‘침묵은 금이다’)은 생의 의미를 다각도로 비춘다.

‘이 지상에서…’의 아이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꿈꾸던 집을 갖게 된다. 한데 일대가 공원이 되면서 집은 철거된다. 할아버지는 집이 있던 자리의 풀밭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 살다 공원관리사무소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할아버지가 머물던 곳에는 토끼풀이 살고 비, 바람이 지나가며 생명이 이어진다. 소년은 이를 보며 생각한다. 이 우주가 모두 할아버지의 집이라고.

평생 높이뛰기 연습을 하다 하늘로 솟구쳐 오른 뒤 나타나지 않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던 저 먼 곳에서부터 높이뛰기해서 잠시 머물다 가는 허공이며, 우리가 돌아가서 착지하는 곳이야말로 지친 영혼을 영원히 받아주는 지상의 세계라고.

어떤 말에도 진실이 깃들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된 후 입을 닫은 남성은 말을 하지 않는 동안 행복했다. 그때야 비로소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말하려 애쓰지만 혀가 굳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직장을 잃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다.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남이 신다 해진 신발을 꿰매고 나서부터다. 가장 낮은 곳의 때 묻고 낡은 것을 고쳐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 것. 말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는 ‘나’에게 말해준다.

자신이 뱉은 말이 ‘말빚’임을, 자신이 쓴 글이 ‘글빚’임을 잊지 않는다면 삶은 그만큼 충만하고 진실해질 수 있음을 정제된 문장으로 써내려갔다. 그리고 비우고 낮춰야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준다. 저자가 마음을 깊이 담아 남기고 간 선물을 조금 늦게 발견하고 풀어본 기분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상한 사람들#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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