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언저리의 글로 돌아본 랭보와 프루스트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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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의 마지막 날/이자벨 랭보 지음/백선희 옮김/112쪽·7500원·마음산책
◇프루스트의 독서/마르셀 프루스트 지음/백선희 옮김/136쪽·7500원·마음산책

이자벨 랭보가 그린 오빠 아르튀르 랭보의 모습. 화가 피에르외젠 뒤푸르와 결혼한 이자벨은 아르튀르가 세상을 떠나고 26년 뒤 오빠와 마찬가지로 암에 걸려 사망했다. 오른쪽 사진은 극작가 로베르 드 플레르(왼쪽), 작가 뤼시앵 도데와 함께 사진을 촬영한 마르셀 프루스트(가운데). 마음산책 제공
이자벨 랭보가 그린 오빠 아르튀르 랭보의 모습. 화가 피에르외젠 뒤푸르와 결혼한 이자벨은 아르튀르가 세상을 떠나고 26년 뒤 오빠와 마찬가지로 암에 걸려 사망했다. 오른쪽 사진은 극작가 로베르 드 플레르(왼쪽), 작가 뤼시앵 도데와 함께 사진을 촬영한 마르셀 프루스트(가운데). 마음산책 제공
이 책 두 권과 마주 앉아서 지난해의 끝날과 새해 첫날을 이어냈다. 뒤표지를 닫으며 그 운 좋은 선택에 대해 안도하고 감사했다.

‘랭보의…’는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의 여동생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첫 장(章)은 대퇴부 암으로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입원한 오빠 곁을 지키며 적어 나간 일기, 그리고 어머니에게 부친 애달픈 편지다. 나머지 두 장은 랭보가 사망하고 한 해 뒤 그에 대한 동경과 몽환적 기억을 담아 쓴 회상록이다.

“회복 희망이 없다”고 판정받은 가족의 병상을 돌보다 보면 문득문득 마음과 정신이 무너진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부축한다. 덧없는 치료 과정이나 환자의 상태에 대한 명료한 기록과 함께 비, 바람, 햇살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감정을 단출히 버무려 적었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나라에 대해 말했다. 하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수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위로하려고 애썼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시는 삶이 그에게 미소 짓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에.”

아름다움을 추구한 기색이 조금도 없는 아름다운 문장이 이어진다. 이토록 불안정한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글을 지어낼 수 있는지. 글은 배움이나 수련이 아닌 피에 섞여 흐르는 무언가가 쓰는 것이 맞는지. 아름다움은 결코 안온함에서 비롯할 수 없는 것인지. 돌이키게 한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가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쓴 역자 서문, 그리고 지인들의 책을 위해 적은 서문 두 편을 모은 책이다.

옮긴이는 “서문도 프루스트에게는 자기 글을 쓰기 위한 행복한 구실일 뿐이다”라고 썼다. 서문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다. 다른 작가의 책에 대한 소개문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음에도 뒤이은 본문을 찾아 읽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겐 사랑할 대상이 없으므로 책 속의 인물들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킨 사랑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무언가에 우리의 삶을 쓰고 싶고, 내일이면 삶과 무관해질 책 속의 잊힌 페이지에 적힌 하나의 이름에 불과해질지도 모를 존재들을 한 시간 동안 헛되이 사랑한 것이 아니었길 바라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가 착각했던 책의 가치를, 이 속세에서 책의 운명을, 멸시조의 말로 이해하게 되었다.”

책읽기의 끝에 대해 감히 상상하지 않으면서 멈춤 없이 찾아 읽어야 함을, 허름한 문장을 함부로 책의 형식으로 묶어 내놓는 것이 얼마나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인지를, 채움 없이 꺼내 쓰는 세월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얼마나 죄스러운 허송인지를, 저릿하게 짚어주는 고운 책들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랭보의 마지막 날#이자벨 랭보#백선희#프루스트의 독서#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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