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세진]중소기업인, 독일 가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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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논설위원
정세진 논설위원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프럼파스트 원재희 대표 등 20여 명과 올해 첫 일정으로 독일의 스마트공장에 갈 예정이다. 공장의 스마트화가 살길이라고 판단한 중소기업인들이 독일 지멘스와 같은 첨단 스마트공장을 둘러보고 국내 공장에 적용시키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자동화 확산

중소기업인들의 마음이 급해진 것은 올해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상승 탓이다. 4차 산업혁명이 구현된 스마트공장은 제조의 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했다. 생산시설의 자동화는 기본이다. 인력난과 임금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로서는 고용을 최소화하는 스마트공장 구축이 간절해졌다. 대형 제조업체들 역시 이미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로봇을 도입하는 등 자동화에 나섰다. 최저임금 인상이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의 방아쇠가 됐다는 농반진반(弄半眞半)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혁명도 높은 임금에서 시작됐다.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앨런의 분석에 따르면 1725년 당시 영국 런던의 실질임금은 최저생계비에 비해 4배나 많았다. 비슷한 시기 중국 베이징(北京)은 1.2배였다. 당시 면방직 공장을 운영하는 런던의 사업가들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면방직 기계를 도입했다. 가장 많이 쓰이던 다축방적기(多軸紡績機)의 가격은 근로자의 5개월 치 임금에 해당됐다. 사업가들은 방적기를 도입하면 인건비를 줄여 더 많은 이익을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람 대신 기계가 일하면서 생산성이 폭등한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영국의 고임금은 활발한 경제성장의 결과물이다.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명예혁명으로 재산권이 보장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의 활동이 활발했다. 이들은 대륙 간 교역을 통해 다른 유럽 국가보다 훨씬 높은 경제성장을 일궜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방적기계와 같은 자본재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대량의 기계가 도입됐지만 일자리는 줄지 않았다. 대량 생산으로 면방직 가격이 떨어지자 수요도 늘었다. 결국 더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투자와 생산이 늘고 고용도 함께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임금 상승은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처럼 경제발전의 결과물로 보기 어렵다.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급격한 최저임금의 상승, 기업 실적과 상관없이 임금 인상을 요구해온 대기업 노조가 만든 합작품인 탓이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스마트공장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돼도 국내 투자를 확대할 생각이 별로 없다. 한 번 고용하면 회사가 어려워도 해고할 수 없는 근로자를 고용할 생각도 없다. 시장마저 작은 한국을 떠나 해외로 가는 것이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고용없는 노동시장의 미래

이미 현대자동차와 같은 기존의 대형 사업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라인으로 바뀌고 있다. 대신 국내에서 공장을 짓지 않는다. 2004년 국내에서 380만 대를 생산하던 현대·기아차는 당시 해외에서 47만 대를 생산했다. 현대·기아차의 생산량이 절정에 오른 2015년 국내에서 400만 대, 해외에서는 450만 대를 만들었다. 450만 대를 생산하는 공장의 일자리는 모두 해외 근로자의 몫이었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직 고용은 오로지 퇴직인력을 보충하거나 정부 요구에 맞춘 하청의 정규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한 한국에서 정부와 노조, 정치권이 만들고 있는 우리 노동시장의 미래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중소기업인#최저임금 인상#4차 산업혁명 시대#스마트공장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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