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서동일]설마를 사실로 만드는 소프트뱅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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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부 기자
서동일 산업부 기자
소프트뱅크를 아직 일본의 통신회사쯤으로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스타트업 분야 취재를 하다 보면 소프트뱅크 관련 소문을 많이 듣는데 매번 그 규모와 범위에 적잖이 놀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지난해 배터리업계에선 “소프트뱅크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업체 몇 곳에 ‘소프트뱅크 전용 생산공장’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소프트뱅크가 인도에 자신만을 위한 배터리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소프트뱅크는 1차적으로 인도시장, 넓게는 아시아권 전체에서 차량공유 서비스 전기차에 사용할 배터리 납품처를 찾고 있는 셈이다. 얼마나 많은 전기차를 배치하려고 전용 생산라인까지 필요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미국 통신사 스프린트(약 21조 원),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약 31조 원) 인수 등 과감한 베팅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이력을 생각해보면 언젠가 이 첩보는 사실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미래 산업 혁신을 이끌 아이디어나 기술을 사들이는 데 수조 원쯤은 우습게 쓰는 소프트뱅크가 일주일 전 또 하나의 이력을 새로 만들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우버(Uber)의 주요 주주가 된 것이다.

그동안 소프트뱅크가 차량공유 서비스에 투자한 이력을 보면 ‘반(反)우버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소프트뱅크는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滴滴出行), ‘동남아시아 우버’ 싱가포르 그랩(Grab), 인도의 택시호출 서비스 올라(Ola) 등 아시아권 3대 차량공유업체에 거액을 투자해왔다. 우버가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직접 진출하며 몸집을 키웠다면 소프트뱅크는 이에 맞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거액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넓혀온 셈이다.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이 공식석상에서 “우버 투자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 화제가 된 일이 지난해 8월이었다. 불과 4개월 사이 그는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소프트뱅크는 사실상 전 세계 도로 정보를 장악했다고 자평하지 않을까.

한 국가를 몸이라고 치면 도로는 국가 곳곳을 촘촘히 연결하는 핏줄이나 마찬가지다. 소프트뱅크는 결국 세계 주요 국가의 핏줄을 속속들이 엿볼 수 있는 현미경을 든 셈이다. 도로에 꼭 사람을 태운 차만 다닐까. 모빌리티는 넓게 보면 사람의 이동뿐 아니라 물류도 포함한다. 쇼핑과 관광, 다른 이동수단과의 연계 등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다.

우버나 디디추싱, 그랩 등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앱으로 언제 어디에서든 차량을 부르면 찾아오는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사실은 이보다 한 단계 더 진화돼 있다. 이용자가 부르기 전 이미 차를 보낸다. 날씨나 지역의 이벤트, 여러 환경적 요인을 통해 학습해 수요를 예측한다. 손 사장은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을 단련시키는 양분은 데이터”라고 했다. 데이터를 많이 가진 자가 쑥쑥 자라 성공의 열매에 가까워진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승리에 가장 가까운 기업이 됐다.

이어지지 않는 것이 없는 시대다. 소프트뱅크는 지구 머리 위에 위성 수천 개를 띄워 사람과 자동차,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원웹(One Web)’ 시대를 준비 중이다. 연결되는 회선마다 데이터가 생산된다. 소프트뱅크는 데이터를 먹고 자라 거인이 될 것이다. 소프트뱅크를 너무 과대평가한 걸까. 소프트뱅크는 이미 수차례 설마를 현실로 만들었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
#소프트뱅크#소프트뱅크 전용 생산공장#원웹#one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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