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바람타고 나는 보이스피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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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에 사는 김모 씨(35·여)는 최근 캐피털업체라는 곳에서 싼 이자로 대출해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업체는 대출이 나가려면 보증보험료 250만 원이 필요하다며 생소한 요구를 했다. 편의점에서 일종의 기프트카드인 OK비트카드 250만 원어치를 사서 핀 번호를 찍어 보내달라는 거였다. OK비트카드의 핀 번호를 가상통화 거래소에 입력하면 카드 금액만큼 비트코인으로 전환된다. 꺼림칙했지만 김 씨는 대출 욕심에 업체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대출은 고사하고 250만 원만 날렸다. 가상통화를 악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에게 뜯긴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가상통화로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김 씨 사례처럼 OK비트카드를 이용하면 대포통장이나 별도 인출책 없이도 바로 가상통화를 통해 돈을 뜯어낼 수 있다. 한국에 있는 인출책이 잡혀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질 염려가 없어 사기범들이 군침을 흘린다. 피해자로부터 빼돌린 개인정보로 가상계좌를 몰래 만들어 범죄에 악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피해자 명의로 가상계좌를 만들게 하고 수수료 명목 등으로 돈을 입금시키게 한 뒤 이를 가상통화로 바꿔 해외 전자지갑으로 이체하는 수법도 생겨나고 있다. 주부 김모 씨(66)는 지난해 말 7000만 원을 빌려주겠다는 캐피털 사칭 전화를 받았다. 업체는 “주부라서 고액 대출이 바로는 불가능하니 일단 5500만 원을 카드론으로 빌려서 보내주면 우리가 바로 갚아 거래 실적을 만들고 7000만 원을 대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업체는 김 씨에게 ‘가상통화 거래소 ○○에서 가상계좌를 만들고 5500만 원을 입금한 뒤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만 하면 거래 실적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고 유혹한 것. 가상통화의 개념을 잘 몰랐던 김 씨는 가상계좌를 은행에서 운영하는 줄 알고 사기범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김 씨가 입금한 5500만 원은 모두 가상통화로 바뀌어 보이스피싱 일당의 해외 전자지갑으로 빼돌려졌다.

특히 최근 보이스피싱 일당들은 금융기관을 사칭해 대출해 주겠다고 속이는 고전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신종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유흥업소에서 질펀하게 노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놨는데 돈을 안 주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이다.

경찰에 따르면 중국, 필리핀 등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일당들은 동영상이 없으면서도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협박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순순히 돈을 보내 입막음하려는 남성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김모 씨(40·서울 거주)도 지난해 11월 이런 협박에 속아 1000만 원을 뜯겼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자들 말을 들어보면 하루 종일 수십 명이 앉아서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면 3∼7일 만에 1건 정도 건진다고 한다”고 전했다.

개인의 불법 인터넷 도박 내용을 확보해 운영자를 사칭하며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과거에 이용했던 도박 사이트에 베팅 잔액이 소액 남았는데 추가로 돈을 채우면 한꺼번에 환불해 주겠다고 유혹하는 식이다. 통상 10만 원 단위로 금액을 딱 맞추면 한 번에 돌려주겠다는 속임수가 많다. 박찬우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계장은 “대출을 권유하는 전화가 오면 일단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하고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대부업체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며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계좌 이체나 현금 보관을 제안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가상통화#보이스피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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