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정성은]김숙이 김구라보다 재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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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1인기업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1인기업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지난해 12월 29일 밤 트위터에 속보가 떴다. ‘MBC 연예대상 유일한 여자 대상 후보! 박나래 박나래 박나래. 나머지는 늘 보던 그×들(유재석 김구라 박명수 김성주 전현무)’. 순간 지금이 2012년도인 줄 알았다. 변하지 않는 라인업. TV가 아무리 올드 매체라고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중년 남성들로만 채울 생각인 걸까.

‘무한도전’ ‘1박 2일’ ‘아는 형님’ ‘한끼줍쇼’ ‘알쓸신잡’ ‘비정상회담’ ‘냉장고를 부탁해’ ‘라디오스타’ ‘문제적 남자’. 우리나라 대표 예능들은 모두 남자들이 떼를 지어 나온다.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남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이상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 번 성별을 바꿔 상상해보자. 모든 예능에 중년 여성들만 나온다.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끝없는 모험을 펼치다 가끔 분위기 전환용으로 남자 게스트를 부른다. 주로 어리고 잘생긴 보이그룹의 멤버가 기쁨조로 투입된다. 그가 등장하면 그녀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의 외모를 감상하고 찬사를 보낸다. 애교를 보여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자취를 하는지, 담배를 피우는지, 은근슬쩍 떠보며 상대를 구경거리로 만든다. 혹여 말이 잘 통하기라도 하면 본인들과 엮기 시작한다.


가물에 콩 나듯 여성이 메인이 되는 예능도 나온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이야기다. ‘여걸식스’부터 ‘언니들의 슬램덩크’까지. 여자라는 수식어 없이는 프로그램을 설명할 수 없다. 반면 남자들이 떼를 지어 나오는 예능은 ‘남자’를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매주 다양한 국가의 청년들이 핫한 안건을 놓고 펼치는 토론의 현장’. ‘비정상회담’의 소개 문구다. 성비는 13 대 0. 양심이 있으면 청년이라는 말은 지워 줬으면 좋겠다. 청년에는 여성도 포함된다.

최근 유행한 쿡방에서도 여성이 설 자리는 없었다. 여성 셰프에겐 냉장고를 부탁할 수 없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셰프는 남성 명사로 기능한다. 집에선 엄마와 아내가 냉장고를 전담하는 게 오랜 전통 아니었나. 육아 예능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 낳고 회사 그만둔 여성은 수백 명 봤지만 아이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한 남성은 한 명도 못 봤다. 그런데 TV에선 남자들이 아이를 본다. ‘기혼 남성 연예인’들이 육아를 하고, 그걸로 돈까지 번다. 이에 질세라 ‘미혼 남성 연예인’을 위한 육아 프로그램도 나왔다. 그들은 생후 530개월로 묘사되고 키워졌다. 정말… 부럽다.

‘어리고 예쁠 때’를 제외하면 방송은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원하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국민 여동생으로서. 언제나 관계 속에 놓인 지위를 획득해야만 자리를 내주었다. “우린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을 못해∼.” 김숙과 송은이가 자주 했던 농담이다. 이들이 팟캐스트를 시작한 이유도 불러주는 프로그램이 없어서였다. 실력이 없어서 그랬던 걸까. 2017년 기적의 예능 ‘김생민의 영수증’도 그녀들의 작품인데 말이다.

홍진경은 무한도전 멤버로 뽑히기 위해 수염 분장을 했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반응을 잠재우기 위해 여성성을 지우고, 자웅동체로 등장해 웃음을 주었다. 조선시대의 일이 아니다. 2018년엔 여성들이 자웅동체가 되지 않아도 TV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외친다. 김숙 송은이 김신영 박나래 홍진경이 김구라 박명수 전현무 김성주 서장훈보다 재밌다.

정성은 1인기업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예능프로#남성 연예인#남성 예능#여성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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