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8년만에 최대규모 反정부 시위… 지방으로도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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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층, 중도개혁정부 규탄서 시작… 서민-청년층 개혁요구 시위로 번져
“하메네이에 죽음을” 구호까지 등장→ 이란정부 강경대응… 시민 2명 사망
로하니 집권후 최대위기 맞아

이란 수도 테헤란과 주요 도시 곳곳에서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당초에는 강경 보수파가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한 중도개혁적인 현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관제 데모’를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제난을 겪는 서민들과 당국의 통제에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 합세하면서 분노는 이슬람 통치 체제 전반으로 확대됐다. 2009년 대규모 시위 이후 최대 규모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이란 제2의 도시 마슈하드에서 시작된 반정부 집회는 31일 현재 수도 테헤란은 물론이고 주요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의 집단행동이 철저히 통제되는 이란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은 이례적이다. 2009년 대규모 시위는 강경 보수파였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대선에 성공하자 진보적인 성향의 대학생들이 부정선거라며 거세게 반발하면서 일어났고 8개월간 이어졌다.

당초 마슈하드에서의 시위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강경 보수파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로하니 정권이 최대 업적으로 꼽는 ‘핵합의안(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등 개혁·개방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다. 마슈하드는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과 경쟁한 보수파 정치인 에브라힘 라이시의 고향으로 이슬람 색채가 짙은 종교 도시다.

하지만 이번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11월 최악의 지진이 발생한 북서부 케르만샤를 비롯해 중부 이스파한, 서부 하마단, 남부 아바즈, 북부 카즈빈과 라슈트 등 주요 거점 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까지 확대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현 정부에 반대하는 보수층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과 실업으로 신음하는 서민 노동자 계층, 자유를 갈구하는 진보적인 청년층이 대거 시위에 동참했다.

거리에서는 이슬람 통치 체제 전반을 뒤집으려는 개혁적인 구호가 터져 나왔다. 시위대는 이란 1인자인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을 끌어내리며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치 않는다” “개혁파와 강경파 모두 끝났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란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테헤란대에서 100여 명의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이려 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라슈트, 하마단, 케르만샤, 카즈빈 등지에서는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물대포를 사용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란 중부 로레스탄주의 하비볼라 코자스테푸르 부지사는 “30일 저녁 적대적 세력의 선동으로 불법 시위가 벌어졌고 충돌 과정에서 시민 2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경제 회생을 최우선 과제로 올해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이란의 실업률은 정부 공식 통계로도 12%에 달하고 물가상승률도 10% 안팎으로 높다. 압돌레자 라마니 파즐리 내무장관은 31일 “불법 시위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면서도 “정부와 의회, 사법부는 단언컨대 국민의 문제를 풀기 위해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겠다”며 급히 사태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탄압하는 정권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고, 이란 국민이 하나의 선택에 직면할 날이 올 것”이라며 전날에 이어 이란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카림 사자드푸르 선임연구원은 “이란 정권에 대한 (트럼프의) 의견은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경 진압의 구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란#테헤란#반정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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