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東亞]<8> 민족혼 불어넣은 연재소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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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소설 ‘흑치상지’ 일제가 강제 중단
백제 되찾으려 싸운 영웅 이야기… 27세에 동아일보 들어온 현진건
일장기 말소때 사회부장 맡아 고초

“죽음보다 슬프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는 한편 언론 탄압도 극에 달했던 1939년 10월. 동아일보는 백제 멸망 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실존 영웅의 이야기 ‘흑치상지’를 소설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소설은 첫 장 제목부터 나라 잃은 백성의 참담함을 “죽음보다 슬프다”고 강조했다. “백제의 백성들이 뭉게뭉게 몰려나왔다. … 다 꼬부라진 늙은 한 할머니도 낑낑하며 … 원한과 분노에 차고 맺힌 돌팔매! 당병의 꼭뒤에 비 오듯 쏟아졌다.”(‘흑치상지’에서)

일제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얼마 못 가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연재를 강제로 중단시키지만 소설은 조선인들의 모습을 백제 유민의 현실과 투쟁에 투영하며 저항의식을 고취했다.

‘흑치상지’의 저자는 ‘빈처’ ‘운수 좋은 날’ 등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자로 익숙한 빙허 현진건(1900∼1943·사진)이다. 현진건은 시대일보 등을 거쳐 1927년 동아일보에 입사했고, 이듬해부터는 사회부장으로 일했다. 당대 대표적 문인답게, 사회면을 편집하면서 문장력이 뛰어나고 제목을 잘 붙이기로 유명했다. “내가 편집한 지면에서는 교향악의 황홀한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라고 했다는 회고도 전해진다.

그는 ‘고도 순례·경주’(1929년) ‘단군 성적(聖跡) 순례’(1932년) 등 국토 순례기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유려한 필치로 민족의식을 드높이기도 했다. 1936년 8월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 사회부장으로 구속돼 고초를 겪었다. 이후 일제의 강압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지만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이 해제된 뒤 그를 학예부장으로 복귀시켰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석가탑 전설을 소재로 소설 ‘무영탑’(1938년 7월∼1939년 2월)을 본보에 연재하며 민족혼을 고취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현진건#흑치상지#일장기#말소#동아일보#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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