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극한 추위도 두렵지 않다”… 눈길-빙판서 즐기는 겨울운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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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일반 시판차와 거의 같은 차로 얼음호수를 질주할 수 있는 것이 겨울 운전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일반 시판차와 거의 같은 차로 얼음호수를 질주할 수 있는 것이 겨울 운전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어느새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어도 온몸 관절이 시린 겨울이 찾아왔다. 날이 추워지면 어디든 가려고 해도 찬바람이 꺼려지는 탓에 다른 계절보다 직접 차를 몰고 나서는 일도 많아진다. 그러나 겨울만큼 운전하기가 까다롭고 걱정되는 계절도 없다. 거리에 차는 많고, 시시때때로 내리는 눈은 운전하는 사람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기 일쑤다. 길은 얼어 있거나 노면에 깔린 염화칼슘에 젖어 있기 십상이다 보니, 조금만 손발의 힘 조절을 잘못해도 차가 운전자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인다. 차는 몰아야겠는데 사고 걱정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겨울은 운전자에게는 아주 불친절한 계절이다.

그런데 때와 장소를 달리하면 겨울 운전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차를 찾기 어려울 만큼 아주 한적한 곳이라면, 사고가 나도 다치거나 뒤처리할 걱정 없이 마음껏 차를 몰 수 있다면. 평소 운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다. 색다른 곳에서 색다른 차를 모는 것도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누군가, 언젠가는 한 번쯤 꿈꾸었을 법한 경험을 할 기회가 매년 겨울 전 세계 많은 사람을 유혹한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운영하는 겨울 운전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자동차 브랜드들의 겨울 운전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차를 알고 나를 알아야 겨울 운전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눈길과 빙판길에서 일단 한번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가 아주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운전자가 본능적으로 차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물론 상황 판단과 대처가 순간적으로 이뤄질 만큼 몸에 배려면 아주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구라도 차를 정상적으로 몰기 어려울 만큼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진행된다. 핀란드,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와 유럽에 있는 알프스 고산지대처럼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를 유지하고 항상 눈이 쌓여있는 곳에 교육장이 마련된다.
최근에는아시아지역에서접근성이좋은일본홋카이도가겨울프로그램개최지로각광받고있다. 애스턴마틴제공
최근에는아시아지역에서접근성이좋은일본홋카이도가겨울프로그램개최지로각광받고있다. 애스턴마틴제공

겨울 운전 프로그램은 대부분 1월부터 3월까지 마련된다. 그중에서도 1월부터 2월 중순까지가 절정이다. 장소로는 스웨덴 아리에플로그가 가장 유명하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약 900km,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져 있는 아리에플로그는 1월과 2월의 평균 최고기온이 영하 6∼7도,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15∼16도로 기온이 내내 어는점을 밑돈다. 11월부터 일 평균기온이 영하 5도이므로 1월까지 두 달 가까운 기간에 계속되는 추위에 호수들은 얼어붙는다. 호수를 덮은 얼음은 아주 두껍고 단단해서 차가 달려도 전혀 무리가 없다. 호수 위에 쌓인 눈을 밀어 코스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이유다.

호수 위 코스는 지형에 구애받지 않을 뿐 아니라 눈을 미는 대로 자유롭게 코스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교육에 최적화된 여러 코스를 만들 수도 있고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세계 유명 서킷을 고스란히 재현한 코스를 달려볼 수도 있다. 물론 어느 코스든 눈과 얼음 위를 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 바퀴를 달리는 거리가 2km를 넘는 서킷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호수가 그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여름에는 얼음이 녹아 호수로 바뀌기 때문에 겨울마다 새로 코스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아리에플로그에서 겨울 운전 프로그램이 많이 열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찍부터 자동차업체들이 혹한 테스트를 위해 즐겨 찾던 곳이기 때문이다. 요즘 새로 나오는 차에 대부분 달려 있는 ABS, ESP 등 능동적 주행안정 시스템도 처음 개발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부분 아리에플로그에서 시험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만큼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 검증됐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동차업체들이 오가면서 프로그램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겨울 운전 프로그램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업체와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주최 측에서 특별히 준비한 차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는 시판되는 차와 같다. 눈과 얼음 위를 달리는 만큼 타이어에 스파이크가 박혀 있고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더해져 있다. 해당 업체 차를 소유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평소 몰아보고 싶던 차들을 극한 조건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국내에서는 아우디가 2007년부터 핀란드 아이스 익스피리언스를 소개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우디 제공
국내에서는 아우디가 2007년부터 핀란드 아이스 익스피리언스를 소개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우디 제공

프로그램은 대개 2박 3일에서 4박 5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모터스포츠에서 경험을 쌓은 강사들이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초심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심화 프로그램 모두 미끄러운 주행조건에서 차를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데 최적화돼 있다. 그곳에서 참가자들은 미끄러운 길에서 부드럽게 출발하고 정지하는 법, 커브를 돌 때와 구불구불한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 느린 속도에서 시작해 점점 더 속도를 높여 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차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다루는 법에 익숙해지게 된다. 심화 프로그램에서는 빠른 속도로 커브 길을 돌며 의도적으로 차체 뒤쪽을 미끄러뜨리는 드리프트를 직접 해볼 수 있다.

직접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눈길 운전 경험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코스를 제대로 완주하기는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워낙 노면이 미끄러운 탓이다. 타이어에 스파이크가 박혀 있어도 속도를 높이면 미끄러져 코스에서 벗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코스 밖으로 벗어나도 쌓인 눈에 처박힐 뿐이어서 차와 사람 모두 크게 상할 일은 없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참가자들이 언제든 코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차 안에 있는 무전기로 상황을 확인하면 미리 준비해 둔 중장비를 이용해 처박힌 차를 끌어낸다. 잘 달리든 못 달리든, 주변이 온통 설원인 북구의 얼음 위에서 눈보라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서도 2007년 아우디가 핀란드에서 열리는 아이스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를 소개한 이후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몇몇 업체는 1980년대부터 겨울 운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소수에 불과하던 프로그램은 이제 프리미엄 브랜드라면 대부분 마련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벤틀리를 필두로 메르세데스-AMG, BMW, 아우디, 포르셰, 재규어, 랜드로버는 물론 폴크스바겐도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겨울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람보르기니처럼, 몇몇 유럽 브랜드는 주요 시장 소비자가 찾기 쉬운 알프스 고산지대를 장소로 쓴다. 최근에는 북반구가 여름인 6∼8월이 겨울인 남반구의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행사도 있다. 아시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찾기 편한 일본 홋카이도도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럭셔리 세단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모습은 평소에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벤틀리 제공
럭셔리 세단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모습은 평소에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벤틀리 제공


물론 공짜로 즐길 수는 없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은 대개 항공료를 제외하고 2500유로(약 320만 원)부터 시작해 6000유로(약 770만 원)를 넘는 것도 있다. 소수만 참여하는 맞춤 프로그램을 요청하면 비용은 더 높아진다. 물론 며칠 동안의 환상적인 운전 경험과 더불어 스칸디나비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식사와 노르딕 스키, 스노모빌, 순록 썰매와 사우나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독특한 관광상품인 셈이다. 다른 곳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서도 그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일정이 발표되면 금방 예약이 끝날 정도로 대부분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다. 지금도 상당수 프로그램이 매진됐다. 브랜드에 따라 약간의 빈자리는 있다. 시간과 지갑사정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위해 한 번 투자해 보는 것은 어떨까.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아리에플로그#모터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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