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역’ 달인 3인의 엇갈린 희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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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 ‘원조 대역’ 코미디언 해먼드, SNL 복귀하자마자 해고돼
환호 : 배우 볼드윈, 해먼드 자리 꿰차… 올해 에미상 남우조연상 받아
미소 : 신인 코미디언 어태머닉, 트럼프 때리기로 극찬받아

한숨 vs 환호 vs 미소
한숨 vs 환호 vs 미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은 ‘원조 트럼프 대역’ 코미디언 대럴 해먼드(62)에게 큰 기회처럼 보였다.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터줏대감으로 1999년부터 18년 가까이 ‘기업인 트럼프’ 인물 묘사를 도맡아 왔기 때문이다. 2009년 약물중독으로 떠난 SNL 무대에 2014년 복귀한 그는 지난해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트럼프를 ‘인간 복사기’ 수준으로 따라 해 ‘돌아온 스타(comeback kid)’란 찬사를 얻기도 했다. 해먼드는 지난해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트럼프 모사보다) 더 재밌는 일을 찾긴 어려울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 당일, 해먼드는 골방에서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채 개표 방송 대신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시청했다.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그해 9월 SNL에서 전격 해고된 것.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를 한 그는 통보 당일 상황에 대해 “나의 브랜드가 없어진 날 모든 것이 사라졌다.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워낙 개성이 강해 따라할 만한 특징이 많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던 ‘트럼프 대역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괴짜 부동산 사업가’ 혹은 ‘유명 TV 진행자’라는 종전 이미지에서 벗어나 극우 포퓰리즘 상징 인물이 된 트럼프의 무서운 변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원조 대역들은 무대 뒤편으로 밀렸다. 반면 트럼프 시대 개막의 충격을 수위 높은 풍자로 해소해주길 바라는 새로운 사회 분위기를 읽어낸 신예 대역들은 2017년을 자신들의 해로 만들어냈다.

연예전문지 배니티페어는 지난해 10월 SNL의 새로운 트럼프 대역으로 등장해 올해 에미상 코미디부문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앨릭 볼드윈(59)을 두고 “최근의 TV 연기 중 단연 돋보였다”고 극찬했다. 트럼프를 웃음거리로만 소화했던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했다는 SNL 책임프로듀서 론 마이클스의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그는 “정치인 트럼프가 상징하는 힘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다”고 대역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정밀한 모사 이상의 정치적 함의를 담아낼 수 있는 연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케이블채널 코미디센트럴에서 ‘대통령 쇼(President Show)’라는 제목의 쇼를 진행하는 신인 코미디언 앤서니 어태머닉(43)도 속 시원한 ‘트럼프 때리기’를 바라는 대중의 심리를 읽어내 인기를 얻었다. 무명이었던 그는 “소름 돋는다”(롤링스톤지)란 극찬을 받은 성대모사와 트럼프의 내면을 표현하는 연기로 당초 15회로 기획됐던 ‘대통령 쇼’를 22회로 연장시켰다. 그가 연기하는 트럼프는 꿈속에서 로버트 뮬러 특검에게 쫓기고 길거리 어린아이의 인형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인물로 묘사된다.

오랫동안 트럼프 연기를 해오다 결정적인 시기에 볼드윈에게 자리를 내준 해먼드는 WP에 “시절은 변한다. 그렇지 않나”라며 이제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WP는 “나라가 바뀌었고 트럼프도 바뀌어야 했다”며 해먼드의 퇴장은 트럼프 시대의 특수성이 빚어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트럼프#코미디언#해먼드#볼드윈#어태머닉#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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