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앞 ‘흉물 작품’은 그만… 거리 살리는 예술로 거듭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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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의 길을 묻다]<상> 시민 눈높이 맞는 작품으로

서울로7017 밑 만리동공원에 설치된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왼쪽 사진)은 도심에 자연스레 녹아든 공공미술을 선보이기 
위한 서울시 첫 시도였다. 대형 건물 앞 조형물은 많은 경우 화단에 가려지거나(오른쪽 사진) 구석에 있어 시민들이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로7017 밑 만리동공원에 설치된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왼쪽 사진)은 도심에 자연스레 녹아든 공공미술을 선보이기 위한 서울시 첫 시도였다. 대형 건물 앞 조형물은 많은 경우 화단에 가려지거나(오른쪽 사진) 구석에 있어 시민들이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빌딩 숲에서 갑작스레 미술작품을 만난다. 흡연구역 한쪽에 불청객처럼 서있거나 화단 사이에 가려져 작품인지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거대하지만 비슷비슷한 모습에 예술적 감흥이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천편일률에 가까운 건축물 공공미술작품 관행을 바꿔 생활 속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도록 서울시가 팔을 걷어붙였다.

○ 도심 ‘흉물’에서 느낌 있는 ‘예술’로

지난달 29일 동상이나 조형물 같은 미술작품을 심의 관리하는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가 출범했다. 그간 공공미술자문회의라는 비상설 기구가 있었으나 지난달 19일 시행된 ‘서울시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상설기구인 위원회로 격상시키고 위상을 대폭 강화했다. 디자인 미술 건축 환경 분야 전문가 12명이 향후 서울의 공공미술 설치 방향과 미래 정책을 논의한다. 위원장은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조형예술과 교수가 맡는다. 서울시가 하는 공공미술정책과 사업은 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이 조례 시행으로 서울시 미술작품심의위원회(심의위) 기능과 역할도 강화됐다. 그동안은 전문가 80명 풀에서 심의위원을 매번 순번으로 정해 심의했다. 이번에는 전문가 20명으로 심의위원을 구성해 책임감을 갖고 심의하도록 했다.

대형 건물 안팎에 세우는 조형물 기준도 깐깐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예술진흥법 건축물미술작품제도에 따르면 연면적 1만 m² 이상 건물을 신·증축할 때는 규모별로 사업비의 최고 0.7%는 회화 조각 등 미술품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 큰 빌딩 앞 조형물이나 로비에 걸린 회화는 대부분 이 기준에 따른다. 서울에만 이런 공공미술작품이 3763개나 있다. 일부 건물주는 법 규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구색 맞추기식으로 작품을 설치한다. 브로커를 통해 예술성보다는 비용 한도에 맞는 작품을 구입한다. 기성작가들과 일종의 카르텔이 형성되기도 한다. 예술을 느껴보자는 취지는 사라지고 신진작가들은 시장에 들어서기 어렵다.

그러나 심의위는 앞으로 준공 한 달 전이 아닌 건축허가를 내줄 때부터 작품 승인에 관여하게 된다. 준공 막바지에는 준공일자를 늦추게 된다는 부담 때문에 제대로 심사하기 어려웠다. 승인률이 60∼70%였던 까닭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심의위가 건축허가 단계부터 작품의 질을 따질 수 있게 됐다.

○ 예술성과 시민 눈높이에 초점

이와 함께 서울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을 지난해 11월 시작했다. 변서영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장은 “공공미술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전제 아래 유명작가 작품을 뽐내는 설치가 아니라 도심에 자연스레 녹아든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광장 보도에 설치된 ‘시민의 목소리’(김승영 작)는 시민이 처음으로 작품을 심사했다. 시민 약 6000명이 투표로 최종 선정했다. 작품을 받치는 좌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우러러 보지 않고 옆에서 사진을 찍고 감상하기 편하게 하자는 취지다. 영구적으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 1년마다 바꾸는 순환제를 택했다. 내년도 선정작은 후보작 5편을 놓고 2018년 3월 시민이 뽑는다.

프로젝트의 하나인 ‘서울로 7017’ 만리동 공원의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은 고가 하부에 설치한 지름 25m, 깊이 4m 대형 광학렌즈 모형이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내부에서 서울 도시 풍경이 보인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예술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도시 공공미술의 갈 길은 멀다. 건축물 미술작품에 동상 기념비 상징조형물 245개를 더하면 4008개나 된다. 과밀상태다. 작품을 놓을 곳이 없어도 법을 따르려면 건물 앞에 억지로라도 작품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011년 건축주가 건축물 설치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어 기금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변 과장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토지를 활용하거나 기금으로 좋은 작품을 수시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공공미술#도심#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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