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믿는 與, 의석수 믿는 野… 선진화법도 소용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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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법정시한내 처리 무산]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담은 427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결국 법정 처리 시한(2일)을 넘겼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법정 시한 내 새해 예산안 처리가 무산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12월 3일 0시 48분, 오전 3시 57분에 본회의 처리가 되긴 했지만 합의는 전날 이뤄졌다. 국회 수정안을 정리하는 작업 때문에 표결만 자정을 넘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여야는 ‘헌법이 정한 처리 시한을 지키자’며 도입한 선진화법의 정신을 3년 만에 내팽개친 뒤 ‘네 탓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고공 행진하는 지지율을, 야당은 표 대결에 밀리지 않는 의석수를 믿고 ‘치킨게임’을 벌인 것이다.

○ 여야 ‘치킨게임’에 처리 불발

선진화법 시행 이후에는 매년 12월 1일 정부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면서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훌쩍 넘기는 일이 사라졌다. 여대야소 지형에선 정부안으로 표 대결을 하면 야당에 불리한 만큼 야당은 쉽사리 협상장을 박차고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소야대 3당 체제와 맞물리며 돌파구 찾기가 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올해 여야는 법정 시한을 하루 넘긴 3일 “냉각기를 갖자”면서 공식적인 협상도 열지 않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일요일이라도 본회의를 열 수 있도록 ‘본회의 공휴일 개의의 건’을 전날 의결했다. 협상이 타결되면 언제든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 모두 소속 의원들에게 ‘비상 대기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 대신 각각 기자간담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장외 여론전을 벌였다.

국회가 첫 ‘시한 내 처리 불발’이라는 오명을 떠안으면서도 ‘치킨게임’을 벌이는 것은 “결국 지연 책임이 상대방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새 정부 국정운영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께서 국정을 맡긴 저희가 책임지고 해 나가고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겠다”고 덧붙였다. 협상이 늦어지더라도 국민의 지지로 돌파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여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보따리를 풀어주는 것은 여당”이라고 강조했다. 늦어지면 결국 정부 여당이 손해라고 압박한 것이다.

○ 예산안 협상 막판 쟁점은…

예산안 협상 타결의 발목을 잡은 쟁점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공무원 증원(1만2000명) 예산과 내년도 최저임금(시간당 7530원) 인상을 보전하기 위한 지원 예산이다. 당초 여야가 꼽은 6대 쟁점 가운데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은 이견을 많이 좁힌 상태다.

여야는 정부안의 공무원 증원 숫자를 줄이는 것에는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나 감소 폭을 놓고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타협안으로) 한국당은 7000명, 국민의당은 9000명, 민주당은 1만500명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1만 명’이라는 숫자를 고집하더라”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을 ‘사람 중심 예산’이라고 천명한 만큼 상징성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소상공인에게 최저임금 인상금을 보전해 주는 ‘일자리 안정자금’ 2조9700억 원에 대해선 입장이 더 팽팽하게 대립한다. 한국당은 내년 1년만 한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 기업이 부담해야 할 근로자 임금을 세금으로 직접 지원해주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국민의당이 “2019년에는 2018년의 50% 수준인 1조5000억 원으로 지원금을 줄이자”는 타협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 밖에 정부 여당이 ‘핀셋 증세’로 이름 붙인 법인세 인상안도 막판 쟁점이다. 여권의 법인세 인상안은 소득 2000억 원 초과 대기업에 대한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구간을 신설해 최고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올리는 내용이다. 한국당은 과표 200억 원 이하 중소기업에 대한 세율을 인하하면 최고세율 소폭 인상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당은 과표구간 신설 없이 최고세율을 2%포인트 올리자는 주장이다.

홍수영 gaea@donga.com·박훈상·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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