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선실속 3명 ‘에어포켓’서 90분 버텨 목숨 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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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낚싯배 전복]

엉망이 된 선실 내부 3일 오전 인천 옹진군 영흥도 인근 해역에서 급유선에 부딪혀 전복된 낚싯배 선창1호의 내부 모습. 선체 벽면 여러 곳이 찌그러졌고 전기선이 벽면 밖으로 빠져나와 있다. 해경 제공
엉망이 된 선실 내부 3일 오전 인천 옹진군 영흥도 인근 해역에서 급유선에 부딪혀 전복된 낚싯배 선창1호의 내부 모습. 선체 벽면 여러 곳이 찌그러졌고 전기선이 벽면 밖으로 빠져나와 있다. 해경 제공
3일 오전 5시 반경 인천 옹진군 영흥도에는 비가 내렸다.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일출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바람은 초당 8∼12m 속도로 불었다. 파고는 1.5m 안팎이었다. 이따금 천둥 번개도 쳤지만 전반적인 기상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영흥도 진두항에 정박한 9.77t급 낚싯배 ‘선창1호’에 승객들이 올랐다. 서모 씨(37) 형제 등 20명이 차례로 배에 탔다. 내부 선실은 금세 찼다. 이른 아침이라 대부분 자리를 깔고 누웠다. 서 씨 형제는 갑판에서 출항을 기다렸다.

오전 6시경 선창1호가 진두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4km 정도 떨어진 영흥화력발전소 인근 해상이었다. 여기서 낚시를 하고 오후 4시까지 귀항할 예정이었다. 항구를 떠난 지 얼마 안 돼 서 씨 형제의 눈에 뒤편에서 접근하는 배 한 척이 보였다. 336t급 급유선 ‘명진15호’였다. 명진15호는 금세 가까워졌다. 서 씨 형제가 조타실을 향해 외쳤다. “급유선이 다가온다. 부딪힐 것 같다.”

파도와 엔진 소리에 묻혀 듣지 못한 듯 조타실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선창1호는 그대로 항해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명진15호가 선창1호의 왼쪽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낚싯배는 낙엽처럼 뒤집혔다. 서 씨 형제를 비롯해 갑판에 있던 김모 씨(27) 등 3명은 바다로 튕겨 나갔다. 이들은 가까스로 어선에서 떨어진 스티로폼에 매달렸다. 약 10분 후 명진15호가 바다를 향해 조명을 비췄다. 서 씨 등은 “여기 사람 있다. 살려 달라”며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배에서 내려준 사다리그물망을 잡고 겨우 올라갔다. 선실에 있던 송모 씨(42)는 깨진 창문으로 빠져나온 뒤 명진15호에 구조됐다.

사고 직후 명진15호 선장과 선내에 갇혀 있던 심모 씨(31)가 112 등에 신고했다. 오전 6시 42분 인천해경 영흥파출소 소속 구조대가 탄 고속단정을 시작으로 경비정과 헬기가 속속 현장에 도착하면서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구조대는 선실에 갇혀 있던 심 씨 등 3명을 구조했다. 그러나 다른 11명은 대부분 익사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의 생사를 가른 건 이른바 ‘에어포켓’이었다. 구조된 3명은 배가 순식간에 뒤집힌 뒤 공기가 남아 있던 공간에서 약 1시간 30분을 버텼다. 사고 해역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서 김모 씨(42) 등 2명이 발견됐지만 숨져 있었다.

이날 해경 구조 시간을 놓고 일각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해경 고속단정은 신고 3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또 수중구조팀은 사고 1시간이 지난 7시 17분경 도착했다. 이에 해경은 이동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늦은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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