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선실 누웠는데 ‘꽝’… 구명복 안펴진 동생만 빠져나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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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낚싯배 전복’ 생사 갈린 22명

인양된 낚싯배 3일 오후 인천 옹진군 영흥도 남동쪽 1.9km 해상에서 급유선과 부딪혀 침몰한 낚싯배 
선창1호를 바지선 타워크레인이 들어올리고 있다. 해경과 해군은 이날 밤 늦게까지 선장 오모 씨 등 실종자 2명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을 벌였다. 영흥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인양된 낚싯배 3일 오후 인천 옹진군 영흥도 남동쪽 1.9km 해상에서 급유선과 부딪혀 침몰한 낚싯배 선창1호를 바지선 타워크레인이 들어올리고 있다. 해경과 해군은 이날 밤 늦게까지 선장 오모 씨 등 실종자 2명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을 벌였다. 영흥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3일 오전 6시경 인천 영흥도 진두항을 출발한 선창1호 선실에 송모 씨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남달리 우애가 두터운 형제는 바다낚시를 자주 즐겼다. 이날은 겨울을 앞두고 형제가 함께한 마지막 낚시였다. 선창1호 측이 운영하는 네이버 밴드를 통해 어렵사리 예약에 성공했다. 선실에서 형제가 나란히 쉬던 순간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몸이 요동쳤다.

동생(42)은 물과 닿으면 바로 부풀어 오르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인지 작동하지 않았다. 동생은 뒤집힌 배의 깨진 선실 외벽 틈새로 헤엄쳐 밖으로 빠져나온 뒤 구명조끼 끈을 잡아당겼다. 그제야 구명조끼가 부풀어 올랐다. 동생은 낚싯배와 충돌한 급유선 명진15호 선수에 매달린 채 손을 흔들어 구조 요청을 해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형(43)은 선실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뒤집힌 선체 내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변을 당한 이들은 올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낚시 이벤트 대회를 즐기기 위해 새벽 일찍 나선 낚시 애호가였다. 모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예약하던 단골들이다. 이모 씨(53)는 승객 20명 중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예약에 성공한 뒤 조카에게 자랑할 만큼 낚시를 사랑했다. 이 씨 조카는 “삼촌이 오늘 낚시를 나가기 전에 ‘따뜻해지는 내년 3월이 돼야 낚시를 나갈 수 있다’며 ‘올해 마지막 낚시’라고 말했다”며 울먹였다.


경기 시흥의 한 병원에 안치된 장례업체 대표 이모 씨(49)는 부랴부랴 다른 선약까지 취소하고 바다로 나왔다. 평소 다른 이들에게 ‘늘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고 권했을 만큼 안전을 중요하게 여겼다. 사고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침통해했다. 이 씨와 30년 동안 함께 일했다는 회사 동료는 “매일 남의 장례만 해주다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느냐”며 눈물을 뿌렸다.

김모 씨(62)는 ‘올해 마지막 낚시가 될 수 있다’며 전날 밤 급하게 예약을 하고 이날 오전 3시경 낚시를 하러 바다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함께 낚시를 즐겨온 부인 변모 씨(60)는 그날따라 날씨가 추워 함께 가지 않았다고 한다. 변 씨는 “남편이 어젯밤에 목욕을 함께하며 내 등을 밀어줬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평소 딸들이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말할 만큼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흐느꼈다.

전우(戰友)와 함께 밤바다에 나섰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현역 원사 유모 씨(47)는 군대에서 가깝게 지냈던 중사 출신 후배 이모 씨(36)와 낚시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 원래 배에 자리가 없었지만 며칠 전 갑자기 자리가 났다는 말에 나란히 낚시에 나섰다. 유 씨 유가족은 “집에 군대 후배들 준다고 감 두 박스를 사놨는데 이제 줄 사람이 없다”며 울먹였다.

실종된 선창1호 선장 오모 씨(70)는 이번이 선창1호와 함께하는 사실상 마지막 항해였다고 한다. 그는 당초 낚시업체에 고용된 선장이었는데, 내년부터는 자신의 배를 사서 단골 낚시꾼들을 태울 거라고 다짐해 왔다고 한다. 이날 인천의 한 낚시업체에서 만난 오 씨 아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 속 뉴스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보자에게 낚시 방법을 알려주고 갓 잡은 물고기로 회를 만들어줬던 ‘실장’ 이모 씨(40·여)도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 씨 가족이 모두 외국에 있어 4일 오전 7시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선실에 있다가 배가 뒤집히면서 선내에 갇혀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사망자들의 몸에서는 물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애썼던 흔적이 역력했다. 유모 씨(45) 시신에는 얼굴과 몸에 온통 멍투성이였고 발길질을 한 듯 발에 피가 흥건했다. 다른 사망자들에게도 온몸에 상처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들 사인은 대부분 ‘익사(溺死)’로 판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자 7명 중 3명은 사고 당시 갑판에 있다가 배가 뒤집히며 바다로 튕겨져 나가 살아남았다. 서모 씨(35)는 “깜깜한 바다에서 급유선이 다가오는 걸 보고 형과 ‘설마 부딪히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다가 배가 너무 가까이 와서 선장실로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며 “배를 본 지 1분도 안 돼 갑자기 부딪혔다”고 말했다. 서 씨 형제는 “선창1호에서 자주 뵙던 분들이 많은데 우리만 살아남아서 죄인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선내에 있던 3명은 뒤집힌 배 속에 물이 가득 차지 않으면서 생긴 ‘에어포켓’으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 이모 씨(32)는 물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남아있는 공기 덕에 구조대에 의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씨는 이날 정오경 퇴원해 자택으로 귀가했다. 심모 씨(31)와 정모 씨(32)도 저체온증으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가 상태가 호전돼 자택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유가족들은 정부에 “여러 병원에 분산돼 있는 유가족들이 한데 모여 회의할 수 있는 장소와 치료·장례비 등의 비용을 국가가 선지급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흥=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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