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공’ 쫓아내는 베이징… 인력 없어 택배 중단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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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거주 임대건물에 화재… 베이징市, 철거-세입자 퇴거 조치
택배 일 하는 농민공들에 불똥… 알리바바, 베이징 배달 중단

지난달 18일 외지에서 온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베이징(北京)시 다싱(大興)구 시훙먼(西紅門)의 임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1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들 역시 외지 출신 저소득층 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중국 매체들은 “시커멓게 그을린 2층의 췬쭈팡(群租房) 내부가 엉망진창이었다”며 참혹한 상황을 보도했다.

췬쭈팡은 집 한 곳에 여러 명의 저소득 하층민 세입자들이 모여 사는 곳을 뜻한다. 화재가 난 건물은 청중춘(城中村)이었다. 도시 속 농촌을 가리키는 이곳은 저소득층에 임대하기 위해 임의로 올린 건물들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측근인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서기는 지난달 19일 즉각적인 화재 대책 및 불법 행위 단속 조치를 내렸다. 실제 내용은 청중춘을 철거하고 췬쭈팡 세입자들을 모두 퇴거시키는 것이었다. 한 베이징 시민은 본보 기자에게 “지난달 23일 다싱구에는 이런 건물들에 4일 뒤인 27일까지 저소득층들이 모두 떠나야 한다는 공고가 붙었다”고 전했다. 다른 베이징 시민은 “실제로는 농민공으로도 불리는 수많은 외지 출신 저소득 하층 노동자들을 베이징에서 쫓아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거주지를 구하지 못하면 베이징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뜻하지 않게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 중 하나인 전자상거래 택배물류 산업마저 위협하고 있다. 저소득층 노동자 상당수가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데 이들이 퇴거 명령을 받아 베이징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중국 전자상거래협회 관계자는 “많은 택배기사가 퇴거 명령을 받아 택배기사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안전 기준에 미달한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물류창고 및 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베이징 곳곳에서 택배 일시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한 베이징 시민은 본보에 “인터넷에서 구매를 해도 베이징으로는 배송이 안 된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중국의 세계적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인터넷쇼핑몰 타오바오가 베이징 배달을 중단했다. 배달 중단은 40일간 이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와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베이징시의 가혹한 조치에 분노하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지식인 100여 명이 공산당 중앙과 국무원 등에게 공개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차이 서기는 최근 간부회의에서 “퇴거 조치를 성급하게 하지 말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의 민낯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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