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사라진 것을 다시 만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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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소설가
김탁환 소설가
《갈라지고 닳고 마디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마르셀의 손은 아주 따뜻했다. 굳은 살갗 밑에 예민함을 감추고 있었다. 마치 이제는 쓰이지 않게 된 옛 단어들 같았다. ― 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사라지는 것은 서럽다. 사람도 그렇지만 마을이나 제도 혹은 노래도 그러하다. 나는 20대 중후반의 대부분을 필사본 장편소설을 읽으며 보냈다. 띄어 쓰지 않고 구두점도 없이 세로로 이어진 글자로 가득한 책을 읽다가, 붓의 흐름을 따라 검지를 내리기도 하고 그 냄새를 맡기도 했다.

시대물을 쓰다 보면, 소설의 씨앗과도 같은 시간과 맞닥뜨린다. 백 년 전일 수도 있고 천 년 전일 수도 있고 만 년 전일 수도 있다. 가족도 친구도 내가 몰두하는 ‘결정적 하루’에 관심이 없다. 날짜를 이야기해도 난수표처럼 어려워한다. 내가 그 하루를 중심으로 장편을 완성하여 책을 내기 전까지, 그날은 있었으되 지워진 시간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오직 나 혼자만 그 하루를 그리워하며 문장으로 옮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한없이 외롭고 한없이 뿌듯하다.

‘결정적 인간’도 마찬가지다. 백 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미 죽었다. 그들의 무덤을 찾아가 머무른 적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뿐이다. 존 버거가 여든 살 무렵에 발표한 또 다른 소설집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선 망자들이 불쑥불쑥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노작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 대부분이 저승으로 건너 가버린 것이다. 존 버거는, 오직 소설만이, 그들을 저승에서 소환해 이승의 특별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적었다.

있을 때 잘하란 말도 있지만, 사라진 후에야 가치를 발견하는 실수투성이 생명체가 또한 인간이다. 망각과 맞서기 위해선 예민해야 한다. 지금 존재하는 것으로 지난날 존재했던 것을 덮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서럽게 사라진 자와 재회하기 위해선 각별히 공을 들여 시간의 두께를 가늠하고 건너야 한다. 걸음마를 하듯 그때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역사를 다룬 소설을 읽으면, 지금이 아닌 시간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당대의 문제를 순발력으로만 대처하지 않고, 비슷한 고민을 평생 치열하게 펼쳐나간 한 때와 그 시절 인물들과 또 그들이 남긴 언행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실수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반복하진 않는 지혜가 여기에 있다.

늙은 목동 마르셀이 죽은 후 존 버거는 해발 1700m 산을 다시 오른다. 소도 개도 없는 목초지엔 빈 오두막만 덩그러니 놓였다. 산을 오르는 길에 들꽃 한 묶음을 꺾어 잔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마르셀이 가고 이제 존 버거도 갔지만, 두 사람의 결정적인 시간을 기록한 문장은 남았다. 그 문장을 들꽃 삼아 꺾어 품고 저마다의 빈 오두막을 찾아야 할 때다. 홀로 서서 그리운 이의 목소리를 기다려야 할 때다.

김탁환 소설가
#존 버거#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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