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윤창효]산촌 생활의 기본 ‘타이밍’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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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효
자연과 더불어 살려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도시 생활처럼 내일이나 다음 주로 미루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보기 쉽다. 집 안도 절기마다 손을 봐야 한다. 도시에서는 관리실이나 수리 업자에게 맡기면 되지만 산촌은 업자가 출장 오기 힘들 뿐만 아니라 출장비 포함 인건비도 비싸다. 전문 장비나 큰일이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직접 해결해야 한다.

여름철 우기나 건기가 시작되는 늦가을이면 여기저기 손볼 곳이 항상 생긴다. 아궁이에 불이나 연기가 새는 곳이 없는지, 지붕이나 벽에 물이 새지 않는지 등등. 산촌은 더욱 그렇다. 매일 보는 것들도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면 물길도 변하고 토양에도 변화가 생긴다. 항상 사물을 관찰해야 한다.

9월 초쯤 식재한 산마늘은 꽃이 피고 나면 씨가 맺히는데, 때가 되면 씨가 땅에 떨어져서 자연 발화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내버려 뒀는데 30년 경력의 임산물 재배자가 씨를 다 땄느냐고 물었다. 한 봉오리에 많은 씨가 열리기 때문에, 씨를 따서 다시 뿌리면 발아 확률은 높지 않지만 수많은 모종을 구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씨를 받아 생명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나면 씨를 따겠다고 하니 한 임산물 재배 멘토가 “안 된다”고 야단이다. 며칠이 지난 후 하려고 보니 이번에는 비가 왔다. 멘토가 “비가 온다고 밥 안 먹냐”며 야단해서 우의를 입고 산에 가보니 불과 며칠 사이에 씨의 절반 이상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부랴부랴 아내와 함께 3000평을 누비며 씨를 받았다.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지만 엄청난 양의 씨를 수확했다. 60만∼70만 개는 족히 될 듯하다.

젖은 씨는 그늘에 펼쳐 놓고 말렸다. 9월 날씨는 태풍이 오고, 소나기도 자주 내리는 등 고르지 못해 씨를 마당 한쪽에 펼쳐 놓고 바깥일을 보다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씨를 뿌릴 밭을 만들기 위해 평평한 곳의 나무를 잘라내고 뿌리와 큰 돌을 골라냈다. 50평 정도의 밭을 곡괭이로 일구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농기계가 없을 뿐 아니라 빌려도 다룰 줄 모르니 순수한 수작업이다. 꼬박 사흘 동안 밭을 일구었다. 산촌 일은 욕심을 내면 지쳐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고생은 씨를 받고 밭을 만드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작물을 키우는 일은 풀과의 전쟁이라고도 한다. 풀과의 전쟁도 타이밍이다. 작물이나 나무가 어릴 때는 봄에 풀 관리를 잘해야 성장할 수 있다. 가을에 하는 마무리 제초 작업은 내년 봄에 할 풀과의 전쟁을 수월하게 해준다. 백로가 되면 잡초의 씨가 떨어지기 때문에 씨가 떨어지기 전에 제초 작업을 해야 한다. 혼자서 산마늘 밭 3000평의 제초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하다 보니 사흘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초보자에게는 대단한 발전이다. 제초 작업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타이밍을 놓치면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윤창효
 
※필자는 서울에서 정보기술(IT) 업계에 종사하다 현재 경남 거창을 오가며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산촌 생활#풀과의 전쟁#자연과 더불어 살려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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