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애국열사 대접 받는 장성택 형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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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단독 입수한 평양 형제산구역 신미동 ‘애국열사릉’ 장성택 형들의 비석. 가운데 장성우와 오른쪽 장성길이 각각 장성택의 맏형과 둘째형이다. 이 사진은 2015년 5월에 촬영됐다. 익명 제공
본보가 단독 입수한 평양 형제산구역 신미동 ‘애국열사릉’ 장성택 형들의 비석. 가운데 장성우와 오른쪽 장성길이 각각 장성택의 맏형과 둘째형이다. 이 사진은 2015년 5월에 촬영됐다. 익명 제공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해 세상을 경악시킨 지 어느덧 4년이 돼 간다. 2013년 12월 장성택 사형 판결문에는 그가 “개만도 못한 천하의 만고역적”으로 적시돼 있다.

이쯤 되면 그의 가문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실제 한국에선 장성택 일가는 어린아이까지 포함해 3대가 멸족됐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그런데 얼마 전 뜻밖의 사진 하나를 보게 됐다. 북한을 방문한 한 해외 교포가 내게 평양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애국열사릉에서 찍은 사진 중에 장성택의 두 형 묘비가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 교포는 자기가 장성택 형들의 묘비를 찍은 줄도 전혀 몰랐다.


해당 사진은 장성택 처형 1년 반 뒤인 2015년 5월 말에 촬영된 것이다. 북한에서 ‘장성택 잔재 청산’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지 한참 뒤에도 이들이 여전히 애국열사릉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도 묘비는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양 형제산구역 신미동에 있는 ‘애국열사릉’은 북한 체제에 충성을 다하다 사망한 인물들 약 800명이 매장된 곳으로 우리의 현충원과 비교되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이 참관하는 이런 곳에 ‘만고역적’의 두 형인 장성우와 장성길이 여전히 애국열사로 대접받으며 묻혀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탈북민들 역시 북한이 장성택의 두 형 묘를 애국열사릉에서 파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다.

장성택의 맏형인 장성우는 ‘조선인민군 차수(대장과 원수 사이 직급)’로 소개돼 있으며 2009년 77세로 사망한 것으로 묘비에 적혀 있다. 장성우는 북한군 정찰국장, 노동당 민방위부장 등을 지냈다. 둘째 형인 장성길은 ‘조선인민군 장령’으로만 소개돼 있다. 장성길은 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 관장(중장)을 지내다가 67세로 사망했다.

이들은 장성택이 처형되기 각각 4년, 7년 전에 사망했지만, 만고의 역적으로 처형된 동생을 둔 이상 연좌제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북한은 1997년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를 처형한 뒤 그를 등용했던 김만금 농업위원장을 간첩으로 몰아 13년 전 사망해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던 김 위원장의 유골을 파내 부관참시하기도 했다.

장성택의 두 형이 여전히 애국열사로 인정받고 있다면 그의 가족들 역시 처형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시 말해 장씨 집안 3대 처형은 소문에 불과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신뢰할 수 있는 한 대북 소식통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당국이 관례대로 장성택 가문을 몰살시키려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성택의 아내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가 김정은을 직접 찾아가 “내 남편을 죽였으면 됐지 시댁까지 몽땅 매장하려 하냐”며 펄펄 뛰었다고 한다. 평소 김경희는 시댁 식구들을 일일이 챙겨 그들에 대해 애정이 깊다. 김정은은 살아 있는 고모의 위세를 이기지 못해 이미 수용소에 끌고 갔던 이들까지 풀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김정은이 “장성택 가족을 죽이지 않을 테니 고모는 죽은 듯 조용히 지내라”는 제안을 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현재로서는 장성택 집안에서 확실히 처형된 이는 장성택 맏형인 장성우의 차남 장용철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와 장성우의 사위로 외화벌이 업체 사장을 지낸 최웅철이다. 이들은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 12월 12일 이전에 먼저 처형됐다.

장성우 자식 중 막내 외동딸과 결혼한 최웅철은 인맥을 통해 장성택 사건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챘다. 그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처남 장용철에게 연락했다.

“이번 일은 심상치 않아. 우리도 죽을 것 같아. 빨리 외국으로 튀어야겠다.”

“응. 그래 매부, 그럼 빨리 여기로 빠져나와.”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이미 장성택 주변에 대한 철통같은 감시를 펴고 있던 보위부에 포착됐다. 보위부는 즉시 장용철을 현지에서 체포해 소환시켰고, 최웅철도 체포했다. 이들은 조국을 버리고 적들에게 도주하려 했다는 반역 혐의로 장성택 처형 전에 먼저 총살됐다.

이처럼 장성우는 동생만 대역죄인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아들과 사위까지 반혁명분자로 총살된 것이다. 이런 그가 여전히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는 것은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묘가 언제까지 애국열사릉에 있을진 장담할 수 없다.

아직까지 김경희는 살아 있다. 국가정보원은 8월 29일 김경희가 평양 근교에서 은둔하면서 신병 치료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경희가 살아 있다면 그의 시댁 식구인 장성택의 가족은 아직 잡을 수 있는 동아줄이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올해 71세인 김경희조차 사망한 뒤에도 김정은의 자비가 지속될 거라 보긴 어렵다. 시한부 인생을 살 장성택의 가족은 하루하루 어떤 심정일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장성택 처형#멸문지화#애국열사릉#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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