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혼혈-연상-미국인-가톨릭신자’ 英왕실 5대 금기 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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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왕손-영화배우 마클 ‘러브스토리’
과거 英왕실에선 상상도 못할 일… 에드워드 8세는 사랑위해 왕위 포기
가톨릭신자와 결혼도 2년전 허용
유럽 왕자, 평민과 결혼 이젠 보편적… 왕실간 정략 결혼 전통 역사속으로

“우리는 소개팅(Blind date)으로 만났어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죠.”

내년 봄 결혼을 발표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5위 해리 왕손(33)과 미국 영화배우 메건 마클(36)은 27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평범한 자신들의 러브 스토리를 공개했다. 마클은 “나는 미국 사람이기 때문에 솔직히 영국 왕실에 대한 큰 이해가 없었다”며 “소개해준다는 친구에게 내가 물어본 건 ‘그는 나이스하냐’는 딱 하나였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해리 왕손이 세간의 관심을 더 끄는 건 그동안 영국 왕실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다섯 가지를 마클이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마클은 이혼 경력이 있다. 2011년 할리우드 프로듀서 트레버 엥걸슨과 결혼했다가 2년 만에 갈라섰다.

이는 영국 왕실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936년 영국 왕좌에 오른 에드워드 8세는 미 사교계 명사 월리스 심프슨을 사랑했으나 그의 두 번 이혼 경력 때문에 결혼할 수 없게 되자 왕위를 버렸다. 그는 왕위 포기 연설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성의 도움이나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가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른 계기가 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 마거릿은 피터 타운젠드 대령과 뜨거운 사랑을 했으나 그가 이혼남이었기 때문에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사랑을 포기해야 했다.

이혼 경력에도 두 사람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식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 아버지 찰스 왕세자, 형 윌리엄 왕세손이 결혼한 곳이다. 그러나 15년 전이었다면 불가능했다. 영국 성공회는 2002년 이혼한 사람도 성당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두 번째, 마클은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영국 성공회는 왕실이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면 왕위 계승권을 박탈해 왔다. 이 전범이 개정된 게 불과 2년 전이다. 아직도 가톨릭 신자는 군주가 될 수 없다.

세 번째, 마클이 네덜란드계 영국인(백인) 아버지와 아프리카계(흑인)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는 점도 영국 백인 혈통을 중시하는 왕실에서는 없던 일이다. 네 번째로는 유럽이 아닌 미국 출신이라는 점, 다섯 번째로 3세 연상이라는 점도 이례적이다.

다른 유럽 국가 왕실이나 귀족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는 유럽 왕실의 전통은 이제 역사 속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왕실 10곳 중에 왕비가 귀족 가문 출신인 경우는 벨기에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평민과 자유연애로 결혼했다.

2014년 스페인 국왕에 즉위한 펠리페 6세는 스페인 국왕 최초로 평민이자 이혼녀와 결혼했다. 유명 앵커 출신인 레티시아 왕비는 보수적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처음에는 미움을 샀지만 지금은 뛰어난 미모와 지성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럽을 뛰어넘어 다른 나라 출신과 결혼하기도 하는데 덴마크 메리 왕세자빈은 호주 출신, 네덜란드 막시마 왕비는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노르웨이 호콘 왕세자는 마약 전력이 있는 미혼모와 결혼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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