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수진]낙태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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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궁은 나의 것!” “진짜 문제는 낙태죄!” 지난달 15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페미니즘 단체 등이 주최한 집회에서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여성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여성의 권리를 애도한다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은 참가자들은 임신과 임신 중단, 출산 같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여성에게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는 낙태수술 적발 때 1개월까지였던 의사 자격정지를 최대 12개월로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로 촉발됐다. 참가자들은 인구 억제를 위해 몇십 년 동안 낙태를 방조해 온 정부가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낙태를 쟁점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폴란드가 ‘낙태 전면 금지’를 발표하자 10만 명 넘는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반대한 ‘검은 시위’가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결국 우리 정부도 폴란드처럼 계획을 백지화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한국, 일본, 이스라엘, 핀란드 등 9개국을 제외한 25개국은 임신부의 요청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1973년 낙태죄(형법 제269조)를 제정했지만 2012년부터 최근까지 처벌받은 사람은 105명이고, 이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다. 음성적으로 횡행하는 낙태 시술은 OECD 최고치인 한 해 16만 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낙태죄 폐지 청원자가 23만 건을 넘어서자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현행 법제는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낙태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밝혔다.

▷법과 현실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 법에 명시돼 있지만 1997년 이후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사형제 역시 생명권 차원의 폐지론과 범죄 억제와 예방을 위한 존치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낙태죄를 둘러싸고 대치하는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둘 다 소중한 가치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가치 논쟁으로 치달아서는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나 해법을 찾기 힘들다. 낙태죄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손질이 필요하겠지만, 이보다 먼저 피임 교육 강화, 비혼(非婚)모에 대한 지원책 강구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
#낙태죄#페미니즘#나태ㅜ술#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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