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송년회 시즌 택시 잡기 비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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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산업부 차장
김용석 산업부 차장
연말 송년회 시즌. 밤늦게 택시 잡기가 고역인 분들을 위해 필승 전략 하나 공개한다. 택시로 퇴근 17년에, 기사님 수십 명을 집중 인터뷰해 얻은 결론이니 믿고 들어보시라.

전략 수립 1단계. 원인 분석. 극성수기 늦은 밤, 택시들이 변두리 가기를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빈 차로 나오기 싫다는 것.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가며 오며 손님을 태우면 매출이 두 배다. 이를 마다하고 굳이 변두리 손님을 태워 빈 차로 나오길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하루 사납금 채우고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기긴 쉽지 않다.

2단계. 패턴 발견. 오며 가며 승객을 태우고 싶다는 ‘택시의 욕망’은 이동 목적지를 항상 도시 중심부로 향하려는 패턴을 낳는다(그 외에 장거리 선호파도 있다). 이를테면 종로에서 여의도, 여의도에서 강남 가는 것이 종로에서 불광동, 불광동에서 쌍문동 가는 것보다 손님을 태울 확률이 높다. 내가 택시 잡기 어려운 이유는 (택시 기사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중심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3단계. 전략 수립. ‘중심부→주변부 수요’가 외면당한다면 ‘주변부→중심부’는 환영받는다는 얘기. 오후 11시∼밤 12시면 어쨌든 버스와 지하철이 다닌다. 집으로 바로 가는 건 없지만, 집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있다. 먼저 집 방향 대중교통을 탄다. 중심부로 가는 방향에 내 목적지가 놓일 만한 지점까지 이동한다. 그중 택시가 다니는 길목에 내리면 된다.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향하는 수많은 빈 택시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빈 차로 가는 길, 중심부까지 조금 돌아가는 길이어도 부담 없이 태워준다. 광화문에서 일하는 기자는 마포에 살 때 독립문 근처에서 택시를 쉽게 잡았다.

이 전략이 통한 이유는 택시 기사의 이기심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피크타임 거래(탑승)는 택시 기사의 기대 수익을 내 욕구의 값이 충족시키는 지점에서 이뤄진다. 주변부에 사는 내 욕구의 값은 중심부에 사는 경쟁자의 절반에 그친다. 아쉽지만 공급 혁신 없이는 택시 잡기 어려울 수밖에.

선의(善意)만 기대하는 대책은 탁상공론이다. 카카오 택시는 어느새 스마트 택시가 아니라 ‘스마트 승차 거부 택시’가 돼 버렸는데, 서울시가 그걸 막자고 승객 목적지를 가린 공공 택시 앱 ‘지브로’를 만든다고 한다. 손님을 차별하지 않는 ‘착한 앱’을 쓰는 대가로 1000∼2000원을 더 준다는 아이디어다. 그 정도 인센티브로 시장을 바꾸긴 어렵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다. 선의의 헛대책이 난무하는 사이 도시 교통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동차 공유, 카풀 서비스를 내놓은 기업가의 혁신은 낡은 규제 앞에 사그라지고 있다.

혁신성장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공급 측면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핵심”이라고 정의한다. 혁신성장을 놓친 대가는 택시 잡기 힘들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혁신의 목표는 소유 시간의 96%를 주차장에서 낭비하는 자동차의 비효율과 1년에 70억 시간을 교통정체로 낭비하는 운전자의 비효율을 없애 도시의 이동성(mobility)을 완전히 다시 정의하자는 것(미국 우버)이다. 택시 생태계를 죽이자는 게 아니다.

낡은 규제가 혁신을 막는 구조는 사회를 정체시킨다. 선의의 정책 결정자들은 규제가 공익(公益)의 보루라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규제는 한쪽의 사익(私益)을 보장하는 불통의 장벽일 뿐이다. 이런 상황이 답답한 기업인들을 대표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정부와 국회를 찾아가 호소하고 있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합시다.”
 
김용석 산업부 차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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