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기자의 지금, 여기]“서울의 통유리 빌딩, 지진 일어나면 ‘글라스 샤워’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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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고베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 오키무라 다카시

23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서울국제안전포럼에 참석한 오키무라 다카시 일본 고베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 포항 지진 이후 한국의 지진 대응책에 대해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시가 대지진을 겪은 후 첫째 날부터 10년 뒤까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가 출판물로 이미 나와 있다”며 “먼저 비극을 겪은 이웃나라 도시의 경험을 잘 검토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3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서울국제안전포럼에 참석한 오키무라 다카시 일본 고베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 포항 지진 이후 한국의 지진 대응책에 대해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시가 대지진을 겪은 후 첫째 날부터 10년 뒤까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가 출판물로 이미 나와 있다”며 “먼저 비극을 겪은 이웃나라 도시의 경험을 잘 검토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전승훈 기자
전승훈 기자
《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일본의 고베 대지진은 도시 직하형 지진이라 피해가 컸다. 도시에서 발생한 경북 포항 지진도 고베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서울국제안전포럼’에 참가한 일본 지진 전문가 오키무라 다카시 고베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74)를 만났다. 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고베시에서 ‘지진 시의 사면 불안정화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고베 대지진의 복구작업과 피해방지 연구를 진두지휘했다. 》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간사이 지방 효고현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는 리히터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도시 밑바닥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도시직하형 지진이라 인구 집중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총 6435명이 목숨을 잃었고 효고현 총생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10조 엔(약 11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당시 직접 지진을 겪었던 경험은….

“새벽에 잠을 자다가 큰 충격을 느꼈다. 집 전체가 크게 흔들린 뒤 거실로 나와 보니 냉장고가 넘어져 있었고, 피아노가 50cm 정도 움직여 있었다. 찬장이 쏟아져 그 안에 있던 커피잔과 접시가 다 깨졌다. 집안의 보물처럼 아끼던 값비싼 도자기도 깨졌다. 고베 지진 이후로 일본 가정집에서는 앞뒤로 열리는 ‘여닫이문’을 없애고 대부분 옆으로 여는 ‘미닫이 문’으로 바꿨다. 여닫이문은 지진으로 흔들리면 안에 있던 물건들이 문을 밀게 되니까 다 쏟아져버리기 때문이다.”

“고베시 지하에 저류조 200개”

―당시에 정부의 지진대응은 어땠나.

“고베 대지진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지진 안전지대로 알려진 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고베 사람 중에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풍수해나 태풍에는 대비책이 갖춰져 있었지만, 지진에는 전혀 준비가 안 됐던 것이다. 10만여 채의 주택이 전파됐고, 사흘간의 화재로 약 7000동의 건물이 전소됐다. 그런데 소방수가 불을 꺼야 하는 데 물이 없었다. 소화용수를 공급하는 상수도관이 깨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방헬기 창고가 무너져 헬기도 출동하지 못했다. 사망자 중에서는 즉사한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구호가 늦어서 유명을 달리했다. 구조대와 의사가 빨리 접근할 수 있었으면 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고베 대지진 피해조사팀을 이끌었던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도로와 철도, 항만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시설 복구에만 1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고베시는 10년 동안 6개 분야 54개 테마로 나눠 고베 대지진 검증작업을 하고, 이를 토대로 459개 항목으로 대응방법을 정리했다고 한다.

―고베 대지진을 겪은 후 지진대비책은 어떻게 변했나.

“‘레벨1’은 30년에 한 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진 대비책이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지진이다. ‘레벨 2’는 수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 한 강도의 지진에 대비하는 시스템이다. 대지진 이후 도로, 철도, 항만 등 주요 인프라와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레벨2의 지진에도 견디도록 건물 구조를 강화시켰다.”

―지진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전에는 지진 재해를 막는 ‘방재(防災)’에 초점을 맞췄다면, 대지진 이후에는 ‘감재(減災)’가 목표가 됐다.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가 할 일은 피해를 감소시키는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큰 변혁이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베시는 지진 당시 무너져 내렸던 한신고속도로(오사카∼고베)의 철근 강도를 3배로 높이고 교각의 기둥도 폭을 2배로 키웠다. 건물 90%가 파괴되거나 불타버린 고베시 나가타(長田)구의 목조건물 밀집촌은 단단한 최신식 주택으로 바뀌었다. 효고현이 독자 개발한 ‘피닉스 방재시스템’에 따라 지진피해 규모 파악과 구조대 투입, 주민 대피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체계도 구축했다.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의 경험은 일본 전역의 도시 지진 재해구호 시스템 개선에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고베 지진 당시 무용지물이었던 소방시스템은 어떻게 고쳤나.

“화재 진압용 소방용수 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대용량 송수관을 두 줄기로 만들었다. 한 줄이 깨지더라도 나머지 다른 라인이 기능할 수 있게 했다. 만약 두 줄이 모두 깨지더라도 소방수를 긴급하게 끌어다 쓸 수 있는 지하저류조도 만들었다. 고베 시내 곳곳의 지하에 개당 100t짜리 방화 수조 200개가 설치됐다.”

“학교, 최고의 내진설계해야”

―우리나라에서는 포항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되기도 했다. 학교 건물이 지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일본에선 학교가 가장 튼튼한 건물이다. 고베 지진 이후 학교 건물이 최고의 내진설계를 갖추도록 방침을 정했다. 왜냐하면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진 발생 시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대피소로 쓰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도시엔 고층빌딩이 밀집돼 있는데 지진 대비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서울에 와보니 통유리로 장식된 멋진 초현대식 건물이 인상적이다. 건물의 뼈대나 벽체 구조는 튼튼해 보이는데 지진으로 흔들리면 유리창이 먼저 깨질 위험성이 크다. 만약에 그 길을 통과하는 시민이 지진을 만나게 되면 ‘글라스 샤워’(유리파편이 쏟아져 내리는 사고)를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지진이 일어나면 전부 다 빌딩이 넘어가서 피해를 많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외벽이나 인테리어, 천장, 유리창 같은 비(非)구조물이 떨어져 발생하는 2차 피해가 훨씬 심각하다.”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 지진 당시에도 고층 건물이 진짜로 넘어간 것은 한 동밖에 없었다”며 “그것도 지진이 온 후 이틀 뒤에 넘어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고베에서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돼 죽은 사람은 17%에 불과하며, 70% 이상은 건물의 마감재가 떨어지는 바람에 사망했다는 조사도 있다.

―포항 지진에서 ‘필로티 건물’이 지진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일본에서도 지진 이후 1층에 기둥만으로 주차장을 만든 필로티 건물에 대한 지속적인 보강책을 마련해왔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경사재를 넣어 ‘X밴드’로 묶어두거나, 그 벽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필로티 건물 주차장에는 적어도 한 면에는 벽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 내진 진단을 통해서 지진이 올 때 가장 힘을 받았던 아픈 곳을 찾아서 벽을 만들면 된다.”

―일본에서는 민간 건축물 내진설계 보강은 어떻게 진행하나.


“지진이 발생하면 1주일 이내에 전문가가 응급 위험도 판정을 내린다. 이후 건물에 붉은색은 출입금지, 노란색은 경고, 녹색은 안전하다는 표시를 붙인다. 민간주택의 내진 진단 및 보강을 할 때는 주민이 약 30%를 부담하고, 나머지 70%는 공적보조금이 부담해줬다. 다만 집안의 가구 전도 방지대책은 주민 스스로가 100% 책임져야 할 일이다.”

“지속적인 대피훈련 절실”


―포항에서는 리히터 규모 5.4의 지진이었는데 왜 이렇게 피해가 컸을까.

“지진의 규모는 발생하는 지점의 에너지이다. 같은 규모라고 해도 진원까지의 거리, 지반의 딱딱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 특히 지진파는 연약 지반을 만나면 증폭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규모가 똑같아도 연약한 지반에서는 피해가 큰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진의 ‘규모’보다는 지표면에서 흔들리는 정도를 표시하는 ‘진도’를 더욱 중요시한다.”

―포항 지진 후 액상화 현상(지반이 반죽처럼 물러지는 현상)이 의심되는 곳이 나타났는데….

“고베 대지진 때도 액상화 현상이 심했다. 액상화는 지반이 연약한 매립지이거나 지하수 수위가 높은 곳에서 잘 발생한다. 연약 지반인 고베는 액상화로 암벽이 앞으로 이동하면서 항구시설이 바다 쪽으로 기울어 배들이 접안을 하지 못했다. 반면 고베 앞바다의 인공섬 두 군데는 액상화를 고려한 설계로 피해를 면했다.”

―부산에는 해변에 고층빌딩이 밀집돼 있는데….


“지반이 연약한 곳에 고층빌딩을 지을 때는 기초 말뚝을 아주 딱딱한 지반까지 완전히 내려서 지지를 해야 한다. 또한 지진 시 기초 기둥이 부러지지 않도록 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4년도 니가타 지진 당시에 지반 속에 세운 기둥이 부러져 아파트가 넘어간 적이 있다. 이 지진 이후 설계부터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됐다. 해안가 고층빌딩이라고 해도 기초를 어떻게 설계했느냐에 따라 다르다.”

―일본에서 지진으로 원전이 영향을 받는 적이 있는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에 의해서 원자로가 깨지거나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쓰나미로 인해 수해를 입어 원자로가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지진의 흔들림에 의한 시설물의 피해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고베처럼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진이라는 것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기록이 돼 온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기록을 넘어서는 지진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강진이 많았던 일본에서는 어디서든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키무라 교수는 “방재의 최종적인 목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재해로부터 생명을 살리는 데는 3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구조물의 내진설계를 강화하는 하드웨어다. 두 번째는 경계경보, 대피 시스템과 같은 소프트웨어다. 두 가지 모두 행정기관이 앞장서야 할 대책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휴먼웨어’라고 설명했다.

“모든 건물을 완벽히 내진설계를 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또한 지진 정보나 경보를 내려줘도 주민이 대피행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 일본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10년 전에도 지진 겪어봤는데, 괜찮겠지’ 하면서 피난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휴먼웨어’는 주민들이 함께 긴급 대피를 하는 힘으로 ‘지역력’ 또는 ‘주민 방재력’으로 부르기도 한다. 생명을 지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당국과 주민 간의 지속적인 대피훈련이 필요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 고베대 오키무라 다카시 명예교수#서울국제안전포럼#정부의 지진대응#지진대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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