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직접 경영 개입’ 커지는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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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혁신위, 금융기관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 권고 검토
금융위 “혁신위 권고땐 반영 노력”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노동이사제와 유사… 합병 등 중요결정 제동 걸릴수도

금융위원회의 공식 자문기관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혁신위)가 금융공공기관과 금융회사들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조의 목소리가 금융계에서 커지는 마당에 이들의 경영 개입이 확대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KB금융지주도 노조가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려고 시도하면서 논란이 됐다.

22일 혁신위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최종 보고서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근로자 추천 이사제는 근로자들이 추천하는 내부 직원 또는 외부 전문가를 사외이사에 앉히는 제도다.

혁신위는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제도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근로자가 추천한 사람이 사외이사가 될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하는 식이다. 혁신위 관계자는 “근로자가 반드시 노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의무 도입을 권고할지 등에 대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혁신위는 다음 달 금융위에 행정, 인사, 인허가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권고안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최종 보고서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포함되면 금융위는 이를 반드시 따르지는 않더라도 관련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혁신위 권고안을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근로자 추천 이사제의 도입 여부 등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근로자 추천 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노동이사제’(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와 비슷하다. 서울시는 이미 산하기관을 중심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20일에는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추천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 및 금융회사에서 이 같은 시도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이사제는 유럽에서는 독일 등 19개국이 도입했다. 국내에서 논의되는 노동이사제는 독일식 모델을 주로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한국의 기업문화가 달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독일 기업의 이사회는 경영위원회와 감독이사회로 이원화돼 있고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한다. 노동자들이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 경영진을 견제, 감독하는 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사회가 일원화돼 있어 노동이사가 경영에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다.

또 독일은 노사 관계가 협력적이면서 임금 및 단체협상을 산별노조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노사 관계가 적대적인 경우가 많은 데다 개별 회사별로 임·단협을 진행하는 만큼 노조가 임금 인상 등 실익을 얻기 위해 경영진의 판단에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크게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조합원이 이사회로 들어오면서 회사 간 합병, 분할이나 공장 이전 등 근로자들에게 해가 되는 결정에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독일 내부에서도 비판이 많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김성모 기자
#금융혁신위#근로자 추천 이사제#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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