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71>뚝섬 정수장… 수돗물과 물장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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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수돗물 시설인 서울 뚝섬 정수장의 완속여과지(1908년 건축).
우리나라 최초의 수돗물 시설인 서울 뚝섬 정수장의 완속여과지(1908년 건축).
물장수가 있었다. 19세기 서울에서 각 가정에 물을 배달해주던 사람들. 특히 함경도 북청 사람이 많아 북청 물장수라는 말까지 성행했다. 북청 사람들은 물을 팔아 번 돈으로 자식의 유학비를 댄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상수도 수돗물이 보급되기 전 얘기다.

1908년 서울 뚝섬에 경성수도양수공장이 생겼다. 침전지, 여과지, 정수지, 송수실 등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었다. 건물과 시설은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지었다. 뚝섬은 한강 유역에서 수질오염이 가장 적고 유량이 풍부했다. 수돗물 공급용 증기터빈을 돌리는 데 필요한 땔나무와 숯도 많은 곳이었다.

그해 9월, 드디어 서울에 수돗물이 등장했다. 4대문 안과 용산 일대 시민 12만5000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서의 수돗물 공급은 1990년까지 이어졌다.

뚝섬의 옛 정수장과 양수공장은 현재 수도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야외에는 190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사용했던 각종 펌프, 수도관 등을 전시하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송수실. 붉은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아치 모양의 화강석 입구가 두드러진다. 입구 좌우로 ‘경성수도양수공장’ ‘광무 11년 건축’이라는 표석이 지금도 선명하다.

완속 여과지(濾過池)도 인상적이다. 모래와 자갈 등을 깔고 이곳으로 물이 느린 속도로 흘러가도록 해 물속 불순물을 걸러내는 곳이다. 이 여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콘크리트 건물 가운데 하나다. 특히 출입구와 내부의 조형미가 독특하다. 내부는 마치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수십 개의 기둥이 아치형 천장으로 연결돼 있다. 그 아래 바닥에 모래와 자갈 등이 깔려 있다. 천장으로 뒤덮인 여과지의 내부는 어두컴컴하다. 실제로 물이 흐른다면 수많은 기둥이 물에 비쳐 흔들릴 것이고 그 모습은 장관을 연출했을 것 같다. 송수실과 여과지는 지금 기능이 중단되었지만 1908년 당시로서는 서울 한강변의 신기한 볼거리였다.

서울에 수돗물이 등장하면서 물장수는 사라졌다. 1914년경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 6·25전쟁 직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근대 상수도의 발상지인 뚝섬 정수장. 이곳 수도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북청 물장수의 “물 사시오” 외침이 먼저 들려온다. 물장수를 밀어낸 근대 양수장에서 물장수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니,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물장수#경성수도양수공장#수돗물#완속여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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