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역에 침몰한 日군함에서 보물 나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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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해수욕장 인근 비양도 해상에서
침몰 위치-보존상태 등 확인 조사
물품 나오면 수중매장문화재로 신고

공중에서 바라본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1945년 4월 비양도 주변 해역에서 미군 잠수함에 격침돼 수장된 일본 군함에 대한 조사가 실시된다. 제주도 제공
공중에서 바라본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1945년 4월 비양도 주변 해역에서 미군 잠수함에 격침돼 수장된 일본 군함에 대한 조사가 실시된다. 제주도 제공
제주에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직전 만주에서 이동 배치된 관동군 등이 주둔했다. 관동군이 중국에서 약탈한 보물을 미처 가져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그동안 곳곳에서 발굴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제주도가 결정한 일본 군함 수중조사도 ‘보물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제주도는 민간업체에 의뢰해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인근 비양도 앞 해상에 수장된 일본 군함을 조사해 침몰한 위치와 보존 상태 등을 확인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군함과 내부 물품 등에 대한 조사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 나오면 제주도문화재위원회 의견을 들은 뒤 문화재청에 수중매장문화재로 신고할 계획이다.

○ 수중 일본 군함 조사

2007년 5월 북제주문화원이 협재해수욕장에 세운 비석에는 ‘1945년 4월 14일 비양도 남쪽에서 일본 군함 3척이 미군 잠수함의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쓰여 있다. 허호준 박사(정치학)가 쓴 책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에 따르면 이날 미군 잠수함 타이란트는 한림항과 비양도 사이에서 4000t급 탄약 지원함 주산마루, 호위함 노미, 제31해방함을 격침했으며 잠수함 함장 조지 스트리트 3세는 미국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 군함에 승선한 664명 가운데 160명만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해변으로 떠밀려온 일본군 시신을 수습하고 생존자를 구조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본군과 유족들은 이곳을 찾아 위령제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제주의 한 방송사가 비양도 부근 수심 11m 아래에서 일본 군함 촬영에 성공하면서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존재를 확인했지만 이후 공식적인 조사나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도 관계자는 “일본 군함의 실재 여부를 확실하게 규명하고 당시 인명을 구조한 주민들의 선행을 알려 달라는 여론에 따라 공식적인 조사에 나선다”며 “일본 군함이 나오면 일제강점기 군사기지였던 알뜨르 비행장과 같은 다크투어리즘(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해 현장 등을 돌아보는 여행)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보물이 있을까


제주에서 일본군 보물찾기는 제주시 아라동 곰솔군락(천연기념물 제160호) 주변이 주요 무대였다. 2005년 한 업체가 지하 매장물 발굴허가를 얻어 곰솔자생지에서 40∼50m 떨어진 곳에서 시추작업을 했다. 지하 17m까지 뚫었지만 보물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곰솔자생지 주변에서 보물찾기는 그동안 6차례 이뤄졌다. 곰솔 일대는 일본군 제58군 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으로, 중국 등지에서 약탈한 보물 등을 갖고 왔으나 일본이 갑자기 패망하는 바람에 본국으로 가져가지 못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2002년과 2003년에는 서귀포시 상예동, 서귀포시 신시가지, 제주시 애월읍 등지서 일본군 보물찾기 소동이 있었으나 모두 허사였다.

보물찾기 소동의 근원은 ‘결7호 작전’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본이 본토 사수를 위해 제주에 7만여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도민을 동원해 동굴진지, 자살특공기지 등을 구축하는 등 군사 요새화했던 작전이다. 당시 일본군이 중국 등지에서 약탈한 보물을 매장하거나 수장했다는 이야기가 그럴싸하게 포장돼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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