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복제인간의 시대’ 감당할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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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민음사·2009)》

그들은 학생이라고 불렸다. 언뜻 영국의 여느 기숙학교처럼 보이는 ‘헤일셤’에서 아이들은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독자는 소설을 읽을수록 그들이 결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들은 인간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 만들어져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복제인간이었다.

헤일셤에서 나와 성인이 된 뒤에도 그들에게 자유는 없다. 절대로 헤일셤 밖의 사람들과 같은 범주에 속할 수 없으며, 그저 부품처럼 쓰이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그들은 품어 왔던 의문을 쏟아낸다.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1996년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났다. 이를 신호탄으로 동물 복제 실험이 퍼져 나가 인간 복제도 이론적으로 가능해졌을 때, 사람들은 장기 이식 등으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묘책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책은 인간이 복제인간을 부속품처럼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뇌하고 사소한 것에 기뻐하며 슬퍼하는 그들을 지켜보며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복제인간들을 보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양날의 검을 똑똑히 목도하게 된다.

복제인간은 더 이상 소설 속 공상과학이 아니다. 최초의 복제 포유류가 태어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인공 유전자로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어디선가 비밀리에 복제인간을 만드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어느 날, 현실에서 마주친 복제인간이 같은 질문을 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인간들은 영혼이 있는 복제인간의 존재가 두려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윤리의식은 자칫 큰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복제인간#나를 보내지 마#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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