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주산지는 한국 일본 알래스카에 이르는 태평양과 북미 대서양 깊은 바다다. 대구는 잡고 나면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져 회로는 맛보기 힘든 생선이지만, 비린 맛이 없고 도톰한 살이 담백하고 부드러워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일본식 대구 요리 중 가장 흔히 알려진 것은 ‘다라칠리’. 칠리의 의미는 끓는 육수 속에서 생선이 오그라들며 익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날 생선을 거부하는 서양인들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요리다. 서양에서는 대구 살을 즐겨 먹는다.
아오모리 지방의 향토 요리인 ‘자파지루’는 대구의 머리와 뼈, 내장과 함께 무 두부 대파를 곁들이는데 소금이나 된장으로 살짝 간을 한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한국식 대구탕, 대구 머리탕은 일본식과도 비슷한데, 대구 한 마리 부위가 골고루 들어간 해물 내장탕은 진한 양념과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자아낸다. 냄비가 끓으면 부드러운 애, 곤이, 알을 하나씩 건져 와사비(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소주와 곁들인 후 진한 국물은 밥과 함께 마무리한다. 대구는 서양의 정치, 경제,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생선이기도 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 이미 바이킹들은 북대서양에서 대구를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대구 황금어장을 숨겨온 사실도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 ‘피시 앤드 칩스’에서 말하는 생선은 대구다. 영국인들은 그린란드 해안을 낀 아이슬란드 근해까지 진출해 대구를 마구 잡았다. 이 때문에 세 번의 전쟁이 일어날 지경까지 이르자 1976년 유엔의 중재로 아이슬란드 땅에서 370km를 보호받도록 법을 제정하게 됐다. 이후 이 법을 기준으로 각국의 영해기준선이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사용되고 있다. 그 후 아이슬란드에서 잡은 대부분의 대구가 영국에 수출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우리는 돈을 먹지 않는다’다. 몸값이 비싼 대구를 돈에 비유할 정도로 영국인의 대구 소비량은 요즘도 어마어마하다.
서양에서 대구가 이 정도로 소비되기까지는 종교적인 이유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중세에는 1년 중 거의 반년 동안 육류 섭취를 금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양과 저렴한 가격, 스페인에서 대구염장법(바칼라)이 개발된 후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1497년 이탈리아 항해사 존 캐벗은 지금의 캐나다 동부지역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대구 산지(그랜드뱅크스)를 발견했다. 미국 북동부 지역 최대 대구 산지는 ‘케이프코드’이며 뉴잉글랜드 지역에 속한다. 뉴잉글랜드 하면 부의 상징이고 그 중심에 있었던 대구, 노예매매와 그들을 이용해 생산된 사탕수수, 대륙 간의 삼각교역으로 전 세계가 돌아가던 때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요즘에도 저녁식사에 대구를 즐긴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대구는 그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1992년 7월 캐나다 정부는 대구잡이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고, 이 때문에 어업에 종사했던 3만여 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다시 대구가 돌아오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이제는 자연과 공존하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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