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역사를 바꾼 생선, 대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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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양파, 올리브, 허브 등을 곁들인 프로방스 스타일의 대구 요리.
토마토, 양파, 올리브, 허브 등을 곁들인 프로방스 스타일의 대구 요리.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11월∼이듬해 2월 추운 겨울이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생선은 ‘대구’다.

대구의 주산지는 한국 일본 알래스카에 이르는 태평양과 북미 대서양 깊은 바다다. 대구는 잡고 나면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져 회로는 맛보기 힘든 생선이지만, 비린 맛이 없고 도톰한 살이 담백하고 부드러워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일본식 대구 요리 중 가장 흔히 알려진 것은 ‘다라칠리’. 칠리의 의미는 끓는 육수 속에서 생선이 오그라들며 익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날 생선을 거부하는 서양인들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요리다. 서양에서는 대구 살을 즐겨 먹는다.

아오모리 지방의 향토 요리인 ‘자파지루’는 대구의 머리와 뼈, 내장과 함께 무 두부 대파를 곁들이는데 소금이나 된장으로 살짝 간을 한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한국식 대구탕, 대구 머리탕은 일본식과도 비슷한데, 대구 한 마리 부위가 골고루 들어간 해물 내장탕은 진한 양념과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자아낸다. 냄비가 끓으면 부드러운 애, 곤이, 알을 하나씩 건져 와사비(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소주와 곁들인 후 진한 국물은 밥과 함께 마무리한다. 대구는 서양의 정치, 경제,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생선이기도 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 이미 바이킹들은 북대서양에서 대구를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대구 황금어장을 숨겨온 사실도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 ‘피시 앤드 칩스’에서 말하는 생선은 대구다. 영국인들은 그린란드 해안을 낀 아이슬란드 근해까지 진출해 대구를 마구 잡았다. 이 때문에 세 번의 전쟁이 일어날 지경까지 이르자 1976년 유엔의 중재로 아이슬란드 땅에서 370km를 보호받도록 법을 제정하게 됐다. 이후 이 법을 기준으로 각국의 영해기준선이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사용되고 있다. 그 후 아이슬란드에서 잡은 대부분의 대구가 영국에 수출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우리는 돈을 먹지 않는다’다. 몸값이 비싼 대구를 돈에 비유할 정도로 영국인의 대구 소비량은 요즘도 어마어마하다.

서양에서 대구가 이 정도로 소비되기까지는 종교적인 이유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중세에는 1년 중 거의 반년 동안 육류 섭취를 금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양과 저렴한 가격, 스페인에서 대구염장법(바칼라)이 개발된 후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1497년 이탈리아 항해사 존 캐벗은 지금의 캐나다 동부지역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대구 산지(그랜드뱅크스)를 발견했다. 미국 북동부 지역 최대 대구 산지는 ‘케이프코드’이며 뉴잉글랜드 지역에 속한다. 뉴잉글랜드 하면 부의 상징이고 그 중심에 있었던 대구, 노예매매와 그들을 이용해 생산된 사탕수수, 대륙 간의 삼각교역으로 전 세계가 돌아가던 때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요즘에도 저녁식사에 대구를 즐긴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대구는 그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1992년 7월 캐나다 정부는 대구잡이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고, 이 때문에 어업에 종사했던 3만여 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다시 대구가 돌아오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이제는 자연과 공존하며 잘 살고 있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생선 대구#대구 요리#자파지루#피시 앤드 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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