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권’ 사라진 적폐청산… 與서도 “檢 수사방식에 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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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6개월]

문재인 정부 출범(5월 10일) 6개월을 하루 앞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잇따라 자살한 사건을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사건의 당사자를 넘어선 피해자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거기다가 칼을 주고 흔들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때문에 좌천된 검사들에게 4년 만에 당시 맞섰던 사람들을 수사하도록 한 것은 사실상 ‘자력구제 금지’의 법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금태섭 의원은 “국정원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를 방해받았다는 검사들이 다시 수사하는 것은 맞지 않다. 외부에서 봐도 누가 (수사 내용을) 믿겠나”라고 지적했다. 사건을 재배당하라는 의원의 지적에 이금로 법무부 차관은 “대검과 협의해서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참으로 안타깝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폐청산에 대한 원칙과 기준이 흔들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지속적인 적폐청산 수사를 강조했다. 반면 한국당 정갑윤 의원은 “참새 소탕 작전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중국 마오쩌둥 주석이 참새가 해충을 잡아먹는 걸 간과한 채 “곡식을 먹는 해로운 동물을 없애자”며 ‘제사해(除四害) 운동’을 벌이고 난 뒤에 의도와 달리 흉작만 이어졌다는 얘기였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핵심 측근들과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나라가 자꾸 과거에 발목 잡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적폐청산의 명암

정치권에서 매일같이 공방이 벌어질 정도로 문재인 정부 6개월간 국민의 머리에 가장 크게 각인된 것은 경제나 통일·외교 분야도 아닌 적폐청산이다.

현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7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자마자 검찰과 경찰은 어느 기관보다 빨리 움직였다. 몇 개월째 당정청은 ‘적폐청산’ 구호를 외치면서 고발과 수사 의뢰가 이어졌다. 체포와 압수수색, 구속 뉴스가 쏟아졌다. 그리고 약 두 달 사이에 MB·박근혜 정부와 관련된 몇몇 인사들의 자살사건도 이어졌다. 9월 21일 김인식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사장이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사 타깃이었던 하성용 전 KAI 사장은 박근혜 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인물이었다. 이어 10월 30일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에서 국정원 측 방어를 맡았던 정치호 국정원 소속 변호사가 숨진 채 발견됐고,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6일 투신자살했다.

국정원과 군, 각 부처에 설치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팀들이 들춰낸 자료들은 검찰 수사의 단서가 됐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씨 등 전직 국정원장들은 특수활동비 문제로 압수수색을 당했고,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김재철 전 MBC 사장도 각각의 이유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 ‘직권남용’ 위주의 적폐 수사 논란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에선 ‘이전 정권 사정’과 달리 돈이 오고간 뇌물과 정치자금법 위반 범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정치에 관여했다는 혐의(국가정보원법 위반) 등을 받고 있다. 김재철 전 사장 역시 국정원법 위반 혐의의 공범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관련자들은 직권남용 혐의,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에 연루된 김 전 장관은 군형법상 정치 관여 금지,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다.

이를 놓고 노무현 정부 때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MB 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수사, 박근혜 정부 때의 MB 정부 자원외교 수사(성완종 게이트)나 박범훈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 관련 수사 등은 모두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것이어서 현 정부의 적폐 수사와 대비된다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를 놓고 ‘상납’ ‘뇌물’ 적용이 적절하냐는 논란도 있다. 구여권에선 관례적 통치자금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반면 차제에 잘못된 관행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지난 정부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요구한 방식이나 청와대에 돈을 전달한 방식이 ‘관행’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과 별개로 적폐청산 수사가 궁극적으로 MB나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표적성 아이템’ 찾기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 수사나 특수활동비 수사를 놓고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이슈들을 선정해 이에 관여된 모든 사람을 잡아들이겠다는 것처럼 비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 적폐청산의 컨트롤타워가 없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8일 윤 지검장에게 “사건 관계인들의 인권을 더욱 철저히 보장하라”고 지시했다. 검찰 수사팀이 변 검사 수사에 나선 날, 오전 7시에 변 검사의 집으로 들이닥쳐 그의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모욕을 줬다는 지적을 의식한 지시였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런 상황 자체가 컨트롤타워를 잃어버린 적폐 수사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는 “백원우 대통령민정비서관이 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한(恨)’이 서려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반면 청와대는 “청와대가 국정과제의 물꼬를 텄을 뿐이고 이젠 검찰이 알아서 독립적으로 하고 있다”고 부인했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이 취임 때 “민정수석은 수사지휘를 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처럼 검찰 수사 업무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 정부에서 민정수석으로 재직한 한 고위 인사는 “법무부장관을 통해 청와대가 수사의 방향과 정도를 조율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수사의 관성’을 경험하게 된다. 그 관성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살했지 않나”라고 말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출범한 새 정부로선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잘못된 제도나 관행, 즉 ‘적폐’를 해소하는 게 국정 제1과제일 수 있다.

다만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여권이 좋아하는 아이템 위주로 정치권력 차원에서 적폐청산을 한다면 그거야말로 또 하나의 적폐다”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진정한 적폐청산은 컨트롤타워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주제를 파악하고 분류해서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열 dnsp@donga.com·최고야·박성진·전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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