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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69>낙안읍성 옆 김무규 고택과 서편제, 한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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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69>낙안읍성 옆 김무규 고택과 서편제, 한창기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입력 2017-11-09 03:00수정 2017-11-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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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남 구례에서 순천 낙안읍성 옆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야외로 옮긴 단소명인 김무규 고택의 사랑채.
떠돌이 소리꾼 부녀, 유봉(김명곤)과 송화(오정해)는 어느 날 남도땅 한옥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 그곳 사랑채에서 유봉은 눈먼 송화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겨준다. 바로 옆 누마루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고, 이에 맞춰 유봉이 구음(口音)을 부른다.

영화 ‘서편제’ 속 거문고 연주자는 인간문화재이자 단소 명인이었던 김무규(1908∼1994). 촬영 장소는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있는 김무규 생가의 사랑채 누마루. 그런데 그 사랑채 누마루는 지금 구례가 아니라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옆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다.

김무규 고택은 1922년 지어졌다. 건물은 사랑채를 포함해 모두 여덟 채. 이곳에서 김무규는 단소 거문고 판소리 등을 배우고 연주하고 후학을 길렀다. 김소희 명창 등 많은 국악인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서편제’의 주연배우 김명곤도 대학 시절 병 치료를 위해 지리산 암자에 머물다 이곳을 찾아 단소를 배웠다. ‘서편제’를 촬영한 것도 이 인연 덕분이었다.

1980년대 김무규 고택을 눈여겨본 이가 있었다.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을 창간하고 우리 전통문화에 심취했던 예인(藝人) 한창기(1936∼1997)다. 판소리를 사랑했던 그에게 김무규 고택은 매력 덩어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창기는 이 고택을 매입하고 싶을 정도로 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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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1993년 ‘서편제’가 개봉되었다. 이듬해 1994년 김무규는 세상을 떠났고 1997년 한창기도 세상을 떠났다. 한창기의 유족들은 순천시와 공동으로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한창기가 수집한 문화재 6400여 점을 보존 전시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유족들은 김무규 고택을 떠올렸다. 이 집이 비어 있다는 걸 알았고, 이를 매입해 2006년 낙안읍성 옆 박물관 야외 부지로 옮겼다.

구례 고택을 해체해 순천으로 옮길 때, 구례 사람들은 “김무규 선생 고택을 지키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굳이 서운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한창기만큼 우리 전통음악을 재건하는 데 기여한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 고택은 한창기와 잘 어울린다. 터는 바뀌었지만 사랑채 누마루는 영화에서처럼 여전히 담백하다. 마당은 널찍하고 장독대는 넉넉하다. 가을이 되면 사랑채 옆 감나무에 알전구가 켜지듯 감들이 매달린다. 김무규, 한창기, 서편제의 인연을 보는 듯하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서편제#단소 명인#김무규#김무규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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