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걷고 폭식-폭음, 40대男 절반 비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영양조사’

“이 계단을 올라온 분은 4칼로리를 소모해 건강수명이 2분 늘었습니다.”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 계단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행인 중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10명 중 2명꼴도 되지 않았다. 대다수는 바로 옆 에스컬레이터를 택했다. 회사원 김재희 씨(32·여)는 “늘어난 뱃살을 생각하면 걸어볼까 싶다가도 막상 계단 앞에 서면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국인은 지난해에도 ‘건강’에서 ‘비만’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국민 1만 명을 상대로 ‘국민건강영양조사’를 실시한 결과 19세 이상 성인 중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가 25 이상인 비만 환자는 34.8%였다고 6일 밝혔다. 이 조사를 처음 실시한 1998년 비만 환자는 26%였다. 20년 만에 약 8%포인트 늘었다. 특히 지난해 40대 남성 비만율은 49%로 절반에 육박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습관. 하루에 섭취하는 에너지에서 지방의 비중은 2010년 18.8%에서 지난해 22.4%로 늘었다. 같은 양을 먹어도 근육 형성과 노폐물 배출에 도움을 주는 단백질이나 칼륨 섭취는 줄었다는 얘기다. 아침식사를 챙겨 먹는 비율은 같은 기간 76.6%에서 70.4%로 줄어든 반면 ‘월 1회 이상 음주한다’는 사람은 60.5%에서 61.9%로 늘었다. 특히 여성 음주율이 43.3%에서 48.9%로 증가했다.

비만 환자 대다수는 살이 찐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만 인지율은 2001년 70.2%에서 지난해 84.4%까지 올랐다. 하지만 실천은 별개였다. 비만 환자 중 체중을 줄이려고 노력한 사람의 비율은 2010년 60.7%에서 지난해 오히려 58.8%로 줄었다. 하루 30분 이상 걷는다는 사람은 같은 기간 41.1%에서 39.6%로, 일주일에 1시간이라도 땀날 정도로 운동한다는 응답은 2014년 58.3%에서 2년 만에 49.4%로 뚝 떨어졌다.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로 미세먼지가 많거나 운동할 공간이 부족한 점을 들었다. 하지만 서울의 m³당 연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는 2010년 49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지난해 48μg으로 큰 변화가 없다. 이 기간에 전국 공공체육시설은 1만5179곳에서 2만2662곳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비만 내성’을 진짜 원인으로 꼽는다. 2000년대 초중반엔 의료계를 중심으로 비만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효과가 크지 않자 운동 대신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 약’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 문창진 건보공단 비만대책위원장(차의과대 일반대학원장)은 “정부의 비만 예방 예산은 금연 예산에 비하면 쥐꼬리 수준”이라며 “TV에선 쉴 새 없이 ‘먹방’(먹는 방송)이 나와 식욕을 자극한다. ‘비만 안전국’의 지위가 흔들리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무빙 에스컬레이터 등 보행 편의를 높이기 위한 시설이 오히려 운동량을 줄여 건강을 해치는 ‘편의의 역설’ 현상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의 엘리베이터는 2010년 723대에서 올해 790대로, 에스컬레이터는 1437대에서 1649대로 늘었다.

그 결과 성인병은 증가했다. 30세 이상 고혈압 유병률은 2010년 26.8%에서 지난해 29.1%로, 당뇨병 유병률은 9.6%에서 11.3%로 높아졌다. 심근경색이나 뇌혈전증 등 뇌·심장 돌연사의 주요 원인인 고콜레스테롤혈증은 60대 여성 중 47.3%에게서 나타났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 달 초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범부처 차원의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임숙영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동네 의원이나 보건소 등 지역사회에서 식생활을 관리해주고 신체 활동을 늘리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비만#건강#폭식#폭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