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메이지 일왕은 어떻게 근대화의 상징이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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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라는 시대 1·2/도널드 킨 지음·김유동 옮김/1권 824쪽, 2권 812쪽/각 권 3만 원·서커스

메이지 일왕을 중심으로 이뤄진 일본 근대화 과정 생생하게 소개

1889년 2월 11일 ‘대일본제국 헌법발포식’ 모습을 그린 그림. 헌법 초안을 마련한 이토 히로부미는 1888년 “유럽과 달리 일본은 종교가 민심을 통일하기에 미약하다. 일본인이 지닌 유일한 기축(機軸·기관이나 바퀴 등의 중심 축)은 왕실”이라고 말했다. 서커스 제공
1889년 2월 11일 ‘대일본제국 헌법발포식’ 모습을 그린 그림. 헌법 초안을 마련한 이토 히로부미는 1888년 “유럽과 달리 일본은 종교가 민심을 통일하기에 미약하다. 일본인이 지닌 유일한 기축(機軸·기관이나 바퀴 등의 중심 축)은 왕실”이라고 말했다. 서커스 제공
고메이 일왕은 1863년 가모 신사와 이와시미즈하치만 신궁을 참배한다. 재난이 아닌 상황에서 일왕이 궁궐을 떠난 건 250여 년 만이었다. 일왕이 궐 밖으로 나가는 걸 막부가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근세 역대 일왕은 사실 유폐된 국사범 같은 신세였고, 대체로 나라의 발전이나 시대와는 무관한 존재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1862년 11월 7일 고메이 일왕이 쇼군에게 보내는 칙서가 에도성에 도착했다. “막부는 … 중지를 모아 올바른 정책을 정해서 ‘추이(醜夷·추한 오랑캐)’를 거절하라.” 원래 칙서는 칙사가 홀 상단에 앉은 쇼군에게 공손히 바쳤으나 이때는 상단에 칙사가 있고, 쇼군이 신호를 기다렸다가 나아가 칙서를 받았다. 존왕양이(尊王攘夷)파가 대두하고 일왕과 쇼군의 입장이 바뀐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책은 1852년부터 1912년까지 일본의 메이지(明治) 유신과 일왕, 그리고 근대화에 관해 썼다.

1867년 왕정복고가 이뤄지고, 이듬해 8월 메이지 일왕의 즉위식이 열린다. 메이지라는 연호는 일왕이 2, 3개의 이름 가운데 제비를 뽑아서 정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왕은 경험이 부족한 젊은 군주였다.

책은 일왕과 일본의 변화를 좇는다. 일왕은 언젠가부터 서양 요리를 먹었고, 양복을 입었다. 1871년 11월에는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와중에 일본에는 철도와 전신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갔다. 일왕은 전국을 순행하면서 특산물을 보고, 학교를 방문하고, 부대를 열병했다. 저자는 “일왕은 근대 국가 일본의 장래가 산업, 교육, 군대에 달려 있음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고메이 일왕은 서양 문명을 거부했으나, 그 아들은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 됐다.

유신의 주도 세력들이 어떻게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추구했고, 시행착오와 에피소드를 겪었는지 책은 소개한다. 근대화 정책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잇따르기도 했다.

저자는 18권에 이르는 ‘일본문학사’를 집필하기도 했고, 일본 문화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문예평론가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50여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미국인이지만 근래에는 아예 일본 국적을 얻었다.

책은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과 중국 침략을 비판한다. 그러나 왕정복고의 핵심 인물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征韓論)을 펼친 데서 보듯 유신이 이룩한 일왕제적 절대주의와 제국주의를 따로 분리할 수 있다고 보는 건 무리다. 또 “‘합병’이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 한국인은 이러한 (나쁜) 일을 예견했어야 한다”는 등의 서술은 조선 식민지화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다. “민비(명성황후)는 오만하고 부패한 여인”이라며 당대 일본의 왜곡된 시각이 그대로 노출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저자는 “안중근은 청나라와 러시아에 대한 일본의 전쟁 목적을 ‘한국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선전포고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안중근은 일본인이 한국에서 범한 모든 죄를 이토 히로부미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다른 모든 일본인의 죄를 용서했다”고 봤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이야기도 다루는 건 이 책의 장점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메이지라는 시대#도널드 킨#김유동#메이지 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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