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16>봉숭아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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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꽃 ―민영(1934∼ )
 
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우리는 해마다 늦여름이 되면 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이곤 했다. 붉은색이 진해지라고 백반 조각을 넣기도 했고, 그게 없으면 굵은 소금을 함께 빻기도 했다. 만세 자세로 하룻밤 자고 나면 손톱은 예쁜 색으로 변신하곤 했다. 첫눈 오실 때까지 붉은 부분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친구들 너도나도 손톱을 기르던 기억이 난다.

더 이전 세대에서는 봉숭아 꽃물이란 첫사랑 전설이 아니라 일종의 ‘부적’이었나 보다. 민영 시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고 아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주었다. 부적으로서의 봉숭아물은 그가 50세가 되던 해까지 지속되었다. 생각해보면 독특한 경우다. 나이 50이 된 중년 남성의 새끼손가락에 빨간 물이라니, 한국 문화에서 이런 건 좀 어색하지 않은가.

민영 시인은 전혀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봉숭아물은 예쁨이나 부적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봉숭아를 따면서, 잎과 꽃을 빻으면서, 그것을 손톱 위에 매어 주면서 아들을 사랑했다. 시인의 경우, 오히려 50세까지만 봉숭아물을 들였기 때문에 슬프고 속상하다. 그의 새끼손가락에 붉은 물이 여전하다는 것은 사랑해주는 어머니가 올해도 계시다는 말. 더 이상 봉숭아물을 들이지 못했다는 것은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말이다.

‘손톱에 봉숭아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에게도 한 토막의 기억이 떠오를까. 그 기억의 설렘과 그리움과 따뜻함 때문에 적어도 오늘 한 토막만큼은 따뜻하시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봉숭아꽃#시인 민영#어머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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