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완준]몸을 돌려 중국으로 성큼 다가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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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한국에 출판되지 않은 책 ‘대국외교’는 꼭 읽어볼 만하다. 중국 외교부 직속 교육기관인 외교학원 왕판 부원장이 지난해 냈다. “(자신을 낮추는) 도광양회에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국외교로 중대 변화가 발생했다”며 ‘중국 특색 대국외교’의 30년 방향을 제시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달 19차 당 대회에서 천명한 대외전략과도 같다. 시진핑 시대 중국의 동북아 한반도 전략을 추적할 중요한 단서들이 많다.

인상적인 대목을 소개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동맹 관계망은 다른 국가들(중국)의 안보를 민감하게 만들고 상호 신뢰를 어렵게 만든다. 아시아에서 이런 냉전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 북핵 포기가 당면한 주요 임무이지만 북핵 포기는 동북아 안보문제의 근본 목표가 아니다. 관건은 다자 안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북핵 해결은 반드시 다자 안보 기구 설립과 연결돼야 한다.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구실로 미국의 지역 동맹 체계를 강화하는 걸 반대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반대한다.”

한미, 미일 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니 해체하고 이를 대체하는 다자 안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 목표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깊은 중국 전문가 역시 통화에서 ‘냉전적 사고’를 얘기했다. “사드 배치는 냉전적 사고이고 중국의 대외전략은 냉전적 사고를 돌파하는 것이다.”

시 주석도 당 대회 업무보고에서 냉전적 사고를 꺼내 들었다. “냉전사유와 강권정치를 단호히 버리고 동반자가 되되 동맹을 맺지 않는 국가 관계의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중국에 냉전적 사고와 한미, 미일, 한미일 동맹은 같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입을 통해 시 주석에게 약속한 △미국 MD에 가입하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는다는 ‘3NO’는 한미, 미일 동맹에 대한 시 주석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은 한미 동맹은 북한 문제에만 국한돼야 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런민일보는 강 장관의 여러 발언 가운데 “한미일 안보협력의 범위가 북핵 미사일 위협 억제와 대응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발언에 초점을 맞췄다. 환추시보는 “의도적으로 한미 군사동맹을 확대하는 미국의 대국게임을 한국이 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과의 동북아 전략 경쟁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은 반대다. 동맹을 북한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동맹 글로벌동맹으로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실제 내용은 “중국 견제에 협력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이런 동맹의 기차에 올라탔다.

문 대통령은 9월 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동북아가 다자적인 안보협력 체제가 돼야만 근원적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될 수 있다”며 “우리가 꿈꾸는 좀 더 원대한 미래”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중국이 주도하길 꿈꾸는 미래 다자 안보 구조와 같다.

따라서 사드 봉합은 단지 한중관계 개선을 위한 마지막 발걸음이 아니라 미국에 기울었던 몸을 돌려 문재인 정부가 중국으로 성큼 내디딘 첫 발걸음이다. 정부는 한중관계 개선이나 북핵 협력에 국한해 설명하지만 중국은 이미 한국의 전략 변화를 감지했다.

이에 대해 관영 중국중앙(CC)TV는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 소속 전문가의 입을 빌려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이 MD와 한미일 동맹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했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대국외교#중국 외교#시진핑#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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