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대신 암모니아-이산화탄소로 발전기 돌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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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수증기’ 발전 기술 각광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축류형 초임계 이산화탄소 터빈 발전기 및 시험 장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공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축류형 초임계 이산화탄소 터빈 발전기 및 시험 장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공
“수증기를 포기하면 해답이 보인다.”

최근 발전기술 연구자 사이에선 ‘탈수증기’ 붐이 불고 있다. 기존 대형 발전시설은 반드시 대량의 물이 필요했다.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 그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 방법은 화력, 석유, 천연가스는 물론이고 원자력 발전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동력 발전’은 대부분의 대형 발전소에서 써왔다. 물만큼 구하기 쉽고 가격이 싼 물질을 생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엔 수증기를 다른 기체로 대체하는 신개념 열동력 발전 기술이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다.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 물보다 비등점(끓는점)이 훨씬 낮아 쉽게 기화하는 암모니아, 프레온가스 등을 이용해 발전기를 돌리는 것이다. 적은 에너지를 투입해 더 많은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일부 과학자는 이 원리가 기존 발전소 효율을 큰 폭으로 올리는 한편 다양한 신재생에너지를 현실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독일 운터하힝 지열 발전소의 내부 모습. 지하에서 고온, 고압의 열수를 끌어올리는 배관이 보인다. 칼리나파워 제공
독일 운터하힝 지열 발전소의 내부 모습. 지하에서 고온, 고압의 열수를 끌어올리는 배관이 보인다. 칼리나파워 제공
독일 뮌헨에서 12km 떨어진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 운터하힝에 2007년 새로 건립된 지열 발전소가 대표적 사례다. 이 발전소는 지하 3000m에서 퍼 올린 섭씨 122도의 열수(熱水)로 전기를 만든다. 물론 발전을 하려면 이 온도로는 부족하다. 국내 표준 화력발전소에서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온도는 550도, 원자력발전소는 300도 정도다. 대량의 물을 빠른 시간 안에 수증기로 바꿔야 높은 압력을 얻어 터빈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암모니아에 눈을 돌렸다. 암모니아의 비등점은 70도 정도, 물과 섞어주면 발전에 필요한 압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 방법은 발명자인 러시아의 과학자 알렉산데르 칼리나의 이름을 따서 ‘칼리나 순환 방식’이라고 불린다. 지하에서 퍼 올린 뜨거운 물이 발전을 마치고 70∼80도 정도로 식으면 땅속에 다시 밀어 넣는다. 물과 암모니아 혼합 증기는 냉각기를 거쳐 액체 상태로 돌아간 것을 재활용한다. 한 번만 충전하면 외부에서 새로 연료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는 ‘폐쇄형 순환 과정’이다. 운터하힝 시민 대부분은 이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쓰고 있다.

비슷한 기술을 최근 국내 연구진도 개발했다. 국내 전력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화력, 원자력 발전의 효율을 한층 높이는 기술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백영진 열에너지시스템연구실장팀은 물 대신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탄소(CO₂)를 쓰는 새로운 발전방식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초임계란 기체와 액체의 중간 상태로, 기체에 압력을 가해 액체로 압축되기 직전 상태를 뜻한다. 평상시엔 액체처럼 흘러 다니지만 기체처럼 순식간에 확산되기도 한다.

에너지연 연구진은 이 방식을 대용량 발전시설에서 쓰는 ‘축류형 터빈 발전장치’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물을 이용하는 기존 방식보다 발전효율을 2∼5%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모든 발전소에 이 방식을 적용하면 1000MW(메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 5기를 증설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 신재생에너지연구소(NREL)도 최근 CO₂를 발전장치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영진 실장은 “기존 발전시설을 개조하는 것도 가능하며 새로 짓는 경우는 발전소 크기를 30%까지 줄일 수 있어서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신개념 열동력 발전기술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실용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의 단점 중 하나인, 기존 발전시설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크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송윤호 전략기술본부장은 “지열발전은 물론이고 집열식 태양열 발전시설 등에 적용하기에도 유리하고, 공장 등에서 버려지는 폐열로 전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면서 “국내에서도 포스코 등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탈수증기 기술#축류형 터빈 발전장치#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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