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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받았던 곳에 ‘루터의 신발像’… 종교개혁 큰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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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받았던 곳에 ‘루터의 신발像’… 종교개혁 큰 걸음

정양환기자 , 보름스=정양환기자 입력 2017-10-23 03:00수정 2017-10-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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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루터의 도시를 가다]
<下> 아이슬레벤-보름스
독일 아이슬레벤에 있는 마르틴 루터의 생가. 다섯 형제자매 가운데 첫째였던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에 태어났다. 아이슬레벤·보름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양심에 불복하는 건 옳지도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서 있나이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1521년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독일 보름스에서 천명했던 이 말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당시 입장을 번복했다면 프랑스혁명도 미국도 없었다.” 두 나라엔 기분 나쁠 소리겠지만, 그만큼 루터의 신념은 칠흑 같던 중세를 찢고 타올랐던 근대의 횃불이었다.

동아일보는 ‘종교개혁 500주년’(31일)을 앞두고 비텐베르크와 아이제나흐에 이어 보름스와 아이슬레벤을 찾았다. 루터가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아이슬레벤과 제국회의가 열렸던 보름스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 아이슬레벤―그는 떠났을지라도

인구 약 2만4000명(2006년 기준)의 작고 아담한 아이슬레벤. 공식 지명에는 ‘루터슈타트(Lutherstadt·루터의 도시)’가 달려 있다. 구석구석 건물과 돌바닥에 루터의 상징인 ‘장미 문양’이 박혀 있다.

여기서 나고 자란 루카스 버켈 씨(54)는 “시민들은 루터의 도시에 산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후미진 골목 벽화에도 루터가 그려져 있다. 장난감 가게에서는 500주년에 맞춰 출시된 루터 플레이모빌을 어린이들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루터의 생가(生家)와 사가(死家)는 걸어서 10여 분 거리. 생가 입구엔 덴마크 동화작가인 안데르센(1805∼1875)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전시관 관계자는 “1831년 방문해 동화 집필의 큰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루터는 생후 1년 뒤 다른 도시로 떠났는데, 영적 기운은 머문 시간과 상관없나 보다.

목관(木棺)이 전시된 사가 2층 창밖으론 성 안드레아스 교회가 보였다. 1546년 고향에 온 루터는 2월 15일(일부에선 14일이라고 주장) 여기서 ‘마지막 설교’를 펼쳤다. 그리고 18일,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이후 평생의 동지였던 필리프 멜란히톤은 짤막한 글 하나를 영전에 바쳤다. “비록 그는 숨졌을지라도…, 루터는 여기 살아 있다.”
 
그가 보름스에서 재판받던 장소에 만들어진 ‘루터의 신발’(첫번째 사진)과 아이슬레벤 시내 곳곳에서 마주치는 ‘장미 문양’(두번째 사진)은 500년째 이어진 루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아이슬레벤·보름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보름스―나무로 변한 지팡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역사적 현장인데 의외로 루터 흔적이 적다. 게다가 14세기 완공된 보름스대성당 덕에 가톨릭 방문객이 훨씬 많다.

루터가 신성로마제국에 심문받은 주교궁도 지금은 오붓한 공원으로 바뀌었다. 1689년 프랑스군 침공 때 무너졌다. 재판 장소엔 크지 않은 기념 조형물뿐. 올해 종교개혁의 큰 발걸음을 뜻하는 ‘루터의 신발’이 새로 만들어졌다. 워낙 커서, 모두들 발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 루터의 족적은 누구라도 품는단 의미일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868년 세운 ‘루터 동상’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목회자는 “훗날 독일 황제가 된 빌헬름 1세도 제막식에 참여했다”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루터 동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자들이 둘러싼 풍채가 꽤나 장엄하다.

서쪽 동네에는 흥미로운 사연의 ‘루터의 나무’가 있다. 제국회의 때 두 할머니가 다퉜는데, 루터를 응원한 이가 “그가 옳으면 여기서 싹이 날 것”이라고 했단다. 훗날 땅에 꽂은 지팡이가 자랐단다. 야사일 뿐이겠지만, 당시 이 도시엔 루터 지지자가 1만4000여 명이나 몰려들었다. 그때 보름스 인구는 겨우 7000명이었다. 진짜 기적은 나무로 변한 지팡이가 아니다. 절대세력에 맞섰던 한 선지자의 용기가 일깨운 민중의 각성이었다.
 
▼ “한국교회의 개혁, 루터가 답이다” ▼
 
‘종교개혁의 불꽃…’ 출간 김현배 목사

“오늘날 교회의 개혁과 부흥의 답은 루터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졌다면 진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지난달 독일에서 만난 김현배 베를린비전교회 목사(사진)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무게’를 강조했다. 그는 올해 5월 ‘종교개혁의 불꽃 마틴 루터’를 출간했다.

―본질적으로 루터는 누구인가.

“단순히 종교개혁자가 아니다. 신학자 번역가 목회자 교육자 등 여러 모습을 지녔다. 또 다른 종교개혁자 멜란히톤은 루터를 종종 사도 바울과 비교했다. 복음을 위한 열정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고집도 세고 때로 폭발적인 분노도 드러냈다. 그랬기에 타협하지 않고 진리에 목숨을 바쳤다.”

―올해 독일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여러 5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500주년은 숫자에 불과하다. 루터는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하나님이 없는 성직자를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신이 잘 전해지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교회에 가장 큰 고민은 뭐라고 보나.

“유럽을 보면 현재 교회의 영적 쇠퇴가 심각하다. 독일에서 저명한 디트머 루츠 목사는 최근 ‘독일은 스스로 경작해 추수하기 불가능한 선교지가 됐다’고 한탄했다. 한국 교회도 세속화와 윤리의식 부재를 반성해야 이런 절망을 겪지 않을 것이다.”
  
아이슬레벤·보름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종교개혁 500주년#마르틴 루터#독일 아이슬레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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