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이 하루 10건 실종신고 처리… “매뉴얼 대신 감에 의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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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이 밝히는 실종수사 실태

‘어금니 아빠’ 이영학(35) 사건을 둘러싼 경찰의 초동수사 부실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초 경찰은 이영학의 집을 수색한 시간을 2일 오전 11시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는 2시간 뒤인 오후 1시였다. 이영학 딸 이모 양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망우사거리 주변 패스트푸드점의 폐쇄회로(CC)TV를 먼저 확인한 것도 경찰이 아니라 피해자 김모 양(14)의 어머니였다.

본보가 실종전담수사팀 근무 실태를 취재한 결과 김 양 실종을 ‘단순 가출’로 봤던 경찰의 안이한 판단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현행 실종신고 대응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종수사팀 형사들에겐 공식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현실 매뉴얼’이 따로 있다. 대표적인 게 ‘24시간 룰’이다. 실종자와 연락이 끊긴 지 만 하루가 지나야 수색에 나선다는 것이다. 실종 신고 대상자가 24시간쯤 지나면 귀가하는 경우가 많아 생긴 관행이다.

김 양은 실종신고 후 약 13시간 만에 살해됐다. ‘24시간 룰’이 통용되는 한 어느 경찰관도 김 양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한 경찰은 “만약 내가 담당이었다고 해도 김 양이 친구와 놀다가 연락이 끊긴 것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초동 대응의 핵심은 범죄 연루 여부를 신속히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 혐의 없음’으로 성급히 결론 짓고 수색을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선 경찰들은 인력 부족 핑계를 댄다. 위치추적을 해도 휴대전화 기지국 주변 반경 500m까지만 알 수 있어 수색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경찰관 5, 6명이 하루 평균 10건 정도를 처리하려면 버겁다는 것이다.

경찰은 긴급한 사안의 경우 법원 영장 없이도 실종자 통신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추후 개인정보를 무단 조회했다는 지적을 받을까 봐 몸을 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이 의존해야 하는 신고자도 불안에 떠는 경우가 많아 상세한 정황을 알기 어렵다. 이때 경찰관들은 각자의 ‘감’으로 범죄 연루 여부를 판단한다. 한 경찰관은 “실종신고 1000건 중 단순 가출이 990건이다. 그렇다 보니 실종보다 가출에 무게를 두는 선입견이 생긴다”고 말했다.

경찰은 250쪽 분량의 실종신고 처리 매뉴얼을 일선에 배포했지만 현장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한 형사는 “신고자를 진정시키라고만 되어 있지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는 알아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관들 사이에선 ‘징계로또’라는 말까지 나온다. 재수 없게 걸려서 징계받는 직원만 불쌍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전문가들은 실종 사건을 중요 범죄로 분류하지 않는 기본 전제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범죄 연루 정황이 있을 때만 바짝 수색할 게 아니라 가출이 확실하지 않다면 범죄 피해 가능성을 전제하고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18세 미만 아동에 대한 실종신고가 들어올 경우 잠재적 유괴로 간주해 즉각 수사에 착수한다.

실종전담 경찰관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 보니 전문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양 실종 사건을 담당한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 16명 중 12명이 수사 경력 5년 미만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을 잡으면 성과로 인정되지만 없어진 사람을 찾는 일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말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실종 수사에 대한 내부 평가를 강화하고 베테랑 형사들을 배치하는 등 수사 인력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혁 hack@donga.com·신규진·이지훈 기자
#어금니 아빠#실종#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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