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모던 코리안 퀴진’ 열풍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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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꽃, 밥에 피다의 보자기비빔밥 세트.
꽃, 밥에 피다의 보자기비빔밥 세트.
‘모던 코리안 퀴진’(Modern Korean Cuisine·현대적인 한국 요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쉐린 스타로 선정된 한식 레스토랑도 등장하고 있다. 아시아 최고 레스토랑 50곳을 선정하기 위해 진행한 세계 미식가들의 투표 리스트에도 한국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이 손꼽히기 시작했다.

환호도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전통 한식의 위세가 옅어지고 자칫 한식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전통 한식을 차용한 메뉴를 개발하고 고전적인 한식 메뉴를 새롭게 내놓는 레스토랑이 최근 늘고 있다.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재료에서나 맛에서나 훨씬 한국적인 색깔을 높이고 있다. ‘이십사절기’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유현수 셰프는 전통 한식을 탐구하며 ‘두레유’라는 식당을 새롭게 오픈했다.
월향 명동점의 궁중 잣즙 무침.
월향 명동점의 궁중 잣즙 무침.

‘주옥’의 신창호 셰프는 오픈 때부터 직접 담근 식초로 맛을 내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모던 한식을 넘어 혁신적인 서울 ‘퀴진(요리)’을 선보이는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최근 조선시대 궁중음식이던 난면의 레시피를 고증해 훨씬 진보된 풍미의 요리로 내놓았다. 그러더니 고조리서(古調理書·오래된 조리책)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번 시즌에는 아예 이 책에 뿌리를 둔 요리로만 코스를 구성하고 이름을 ‘한국의 고조리서’라고 붙였다.

지난해엔 진주를 중심으로 경남 향토요리를 선보이는 ‘하모’가 미쉐린 1스타를, 반상 컬렉션 등 공간부터 한국 식문화를 강조한 ‘곳간’이 미쉐린 2스타를, 한식 본연의 맛을 강조한 ‘라연’과 ‘가온’이 미쉐린 3스타를 받으며 고전 한식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들이 그간 한식당을 폐점해왔던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제는 자신만의 한식당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마련한 컨템퍼러리 코리안 다이닝 레스토랑 ‘페스타 다이닝’에서는 정통성 있는 한식 공부를 원해온 강레오 셰프가 주방을 맡아 전국 팔도 식재료에 명인들의 요리철학을 반영한 메뉴 개발에 나섰다.
페스타 다이닝의 남산 한우갈비찜과 송화버섯.
페스타 다이닝의 남산 한우갈비찜과 송화버섯.

올해 8월 서울 중국의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어소시에이티드 위드 풀만은 첫 한식당 ‘금수장’이 문을 닫은 지 20여 년 만에 두 번째 한식당 ‘안뜨레’를 새롭게 열었다. 한식의 깊은 맛을 모던하게 풀어내고 있다. 국내외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인 서울 명동 부티크 호텔 ‘호텔28’이 최근 메인 레스토랑을 ‘월향’ 명동점으로 재단장한 것도 눈에 띈다. 막걸리 홀릭을 위한 아지트였던 월향은 지역 전통주 페어링과 전통에 뿌리를 둔 한식을 젊은 감각으로 선보여온 주점형 한식당이다.

캐주얼 한식당의 도전도 흥미롭다. 된장찌개 하나, 파전 하나에도 재료와 장맛의 스토리를 갖춰나가고 나물 반찬이나 밥 자체를 하나의 요리로 내세우는 집밥 메뉴가 늘고 있다. 전통주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판 주점도 술 먹기 좋은 안주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의 요리로서 승부를 거는 메뉴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판세다. ‘꽃, 밥에 피다’ ‘수작반상’ ‘박경자식당’ ‘안씨막걸리’가 대표적인 식당이다.

옛것에 머물러 있지 않은 우리 시대의 한식. 요리 역사는 길지만 결코 길지 않은 레스토랑 문화를 가진 한식은 지금 전통과 미래 사이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다양성과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이런 한식 문화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한식 축제 ‘코리아 고메’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5일까지 18일간 개최됐다. 코리아 고메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이 주최하는 음식축제 ‘월드 한식 페스티벌’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해 선정된 서울 곳곳의 50개 한식당이 각자의 대표 요리를 정성껏 선보이는 일종의 ‘한식 레스토랑 위크’라 할 수 있다.
다담의 연꽃 구절판.
다담의 연꽃 구절판.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로 열린 코리아 고메를 밀착해서 지켜보면서 내심 한식당의 열정과 다양성에 놀랐다. 전통 한식부터 모던 한식까지, 파인 다이닝부터 캐주얼 한식까지 다양한 개성은 다채로움 그 자체였다. 다들 지금 우리 시대의 한식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음식 축제에 올려진 요리는 마치 연극 무대처럼 막이 내리면 사라진다. 코리아 고메 50곳의 요리 중 기억하고 싶은 요리와 그 이야기를 담아봤다. 오히려 새롭고 세련돼 보이는 ‘전통’부터 이를 영리하게 재해석해낸 ‘모던’까지. 익숙하지만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한식의 매력을 천천히 음미해도 좋다.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한식이다.

인사동의 밥집 ‘꽃, 밥에 피다’는 농부와 요리사의 상생을 모토로 건강한 밥상을 낸다. 자극적이지 않은 전통 장류로 맛을 내는데 이번 코리아 고메 메뉴 ‘보자기비빔밥 세트’는 보자기에 선물을 싸서 귀한 손님에게 내놓던 전통 풍습을 접시 위에 옮겨놓았다. 방사 유정란으로 만든 지단 안에 일반 현미보다 소화가 잘 되는 백진주 현미찹쌀밥, 제철 오색 나물을 담고 식용 꽃을 올려 완성했다. 무항생제 돈육을 볶은 고추장, 유기농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다.

한식의 아름다움을 음식 안과 밖에서 매 계절 새롭게 풀어내는 ‘곳간’의 금백코스는 한국적인 아뮤즈 부슈(Amuse Bouche·프랑스어로 입을 즐겁게 한다는 뜻으로 식전 요리)로 식사를 연다. 해남 청무화과와 숙성한 무화과초를 곁들인 과일초, 제주도 꿩고기와 꿩엿 소스가 어우러진 꿩강정, 홍성의 돼지 삼겹살을 가지에 말아 구운 삼겹가지구이, 청송의 가을 사과로 만든 홍로 주스 등 한국 가을의 맛과 기운을 품은 총 9가지 요리를 반상에 올렸다.

핸드픽트호텔 서울의 한식 레스토랑인 ‘나루’는 그간 인기 메뉴를 모아 나루교자상을 선보였다. 12시간 동안 수비드(sous-vide·저온조리) 기법으로 조리한 후 참나물장아찌 간장에 조리듯 구워낸 간장 항정살구이, 고추장아찌를 함께 내는 새우전복장, 48시간 숙성시킨 선어회, 저온 조리 후 허브소금을 곁들인 살치살구이가 나온다.
박경자식당의 박경자 된장.
박경자식당의 박경자 된장.

유현수 셰프가 전통 발효 장과 제철 재료를 활용해 개성 있는 한식을 풀어내는 ‘두레유’는 장맛을 본 후 식사를 시작하던 전통 밥상 문화를 옮겨와 직접 담근 7년 숙성 씨간장으로 모든 코스 요리를 시작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청국장어회는 철감상어회, 국내산 캐비아, 직접 발라낸 척수까지 철갑상어 한 마리를 작은 접시에 올린 요리다. 들기름을 곁들인 청국장 양념으로 잡내 없이 회의 풍미를 살렸다.

유호현 셰프가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만든 ‘박경자식당’의 박경자 된장은 감칠맛을 극대화한 된장볶음탕을 선보였다. 살치살을 볶아 우려낸 기름으로 새우 바지락 등 해산물과 채소, 그리고 직접 담근 재래식 된장을 함께 볶았다. 여기에 4시간 우려낸 닭 육수와 두부 등을 넣고 팔팔 끓인 국물 맛이 끝내준다.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가
곳간의 9가지 식전 음식.
곳간의 9가지 식전 음식.
선보인 난면 요리는 달걀노른자, 밀가루로 반죽한 면을 오미자 국물이나 깻국에 말아 고명을 올려 먹던 조선시대 궁중 음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조리서에서 발견한 난면을 재해석한 이준 셰프는 보통 고명으로 쓰는 석이버섯, 실고추를 함께 넣어 면을 뽑고 닭 가슴살로 낸 육수에 메밀차를 섞고 생버섯을 올려 부드럽고 온화한 현대판 난면을 완성했다.

최근 한국의 고명 문화를 국내 최초로 집필한 ‘아미월’의 유종하 셰프는 흙을 품고 나온 건강한 근채류 특선 메뉴를 선보였다. 대표적인 우엉밀쌈은 여러 가지 채소라는 잡채 본연의 의미를 살린 요리다. 진주 우엉을 저온에서 세 시간 이상 조리해 부드럽게 만든 후 채 썬 양파, 파프리카, 검은깨를 넣고 밀전병으로 말아냈다. 잘게 썬 미나리 고명과 고추장 소스가 맛을 돋운다.

바를 겸비한 세련된 공간에서 전통 한식부터 재해석한 한식까지 흥미로운 요리를 다국적 술과 즐길 수 있는 ‘월향’ 명동점의 궁중 잣즙 무침도 눈길을 끈다. 옛 궁중 주안상에 오르곤 하던 대하잣무침을 재해석한 것으로 죽순처럼 식감 있는 채소 위에 새우 소고기 달걀지단을 올리고 잣 소스를 곁들여 버무려 먹는다. 자극적인 맛으로 획일화된 현재 술안주 문화에 내미는 작은 도전답게 고소한 맛은 물론 영양도 가득하다.

주옥같은 한식 레스토랑 ‘주옥’의 코스 요리 중 가장 인기라는 생선 연잎찜도 주목할 만하다. 레몬소금에 재운 제철 생선과 연근, 표고버섯, 마늘종 등의 구운 채소와 육수를 연잎에 넣어 쪄낸 요리로 은은한 연잎 향이 생선에 부드럽게 배어 있고 식사 내내 연잎 향이 테이블을 향기롭게 한다.
스와니예의 난면. 바앤다이닝 제공
스와니예의 난면. 바앤다이닝 제공

한국계 덴마크인 윈드 민지 김 셰프의 레스토랑 ‘미쉬매쉬’는 외국인도 쉽게 접할 수 잇는 모던 한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그녀가 단품으로 선보인 ‘삼계 요리’ 또한 그렇다. 삼계탕을 끓인 후 살을 발라내 팬에 한 번 더 구워서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하게 요리했다. 찹쌀밥은 한 김 식혔다가 납작하게 모양을 잡아 부쳐내 곁들였는데 튀긴 누룽지와 인삼을 위에 얹고 삼계탕 육수와 간장을 섞은 소스를 부어서 먹는 식이다.

사찰 음식을 꾸준히 연구해온 정재덕 셰프가 이끄는 ‘다담’ 역시 지금 이 시대의 한식의 일부를 장식하고 있다. 연자를 중심으로 펼쳐진 8개의 꽃잎 위에 얇게 채 썬 재료들을 돌려 담고, 치자 시금치 등 천연 색소로 색을 입혀 부친 밀전병에 싸먹는 연꽃 구절판은 국내외에서 각광받는 대표 메뉴다. 홍시꿀 식초를 섞어 만든 홍시 소스를 곁들여 새콤달콤한 맛을 더해 즐길 수 있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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