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대상 된 국정교과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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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위 “靑-국정원 등 개입, 차떼기로 국정화 여론 조작 의혹… 찬성자에 이완용-박정희 적혀”
교육부장관에 수사의뢰 요청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국정 역사교과서의 과오를 조사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11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국정화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 의뢰하라”고 요청했다. 추진 과정을 살펴보니 여론 조작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여럿 포착됐다는 것이다.

수사 의뢰 대상으로는 △교육부에서 국정교과서 업무를 총괄한 A 전 학교정책실장 △성균관대 교육학과 B 교수 △‘좋은학교만들기학부모모임’이란 단체가 꼽히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주 중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 의뢰할 예정이다.

최근 위원회는 2015년 국정교과서 추진 당시 논란이 됐던 ‘찬성 의견서 차떼기 의혹’을 집중 조사해 왔다.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의견 수렴을 진행했던 마지막 날인 2015년 11월 2일 오후 11시경, 서울의 한 인쇄소에서 동일한 양식과 내용으로 제작된 찬성 의견서가 일괄출력물 형태로 대거 50여 박스에 실려 교육부로 전달된 의혹을 말한다. 당시 박스에는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B 교수가 이 단체를 이끌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는 “교육부에 보관돼 있는 103박스 분량의 찬반 의견서 가운데 일괄출력물 형태의 박스 53개를 열어보니 4종류의 동일한 의견서 양식에 일정한 유형의 찬성 이유가 반복되고 있었다”며 “같은 사람이 찬성 이유를 달리하며 수백 장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수상한 점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교육부 직원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당시 학교정책실장이 ‘밤에 찬성 의견서 박스가 도착할 것이니 셀 수 있도록 직원들을 야간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며 “이에 따라 교육부 직원 200여 명이 밤 12시까지 계수 작업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찬성 의견을 보낸 이 가운데 1613명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으로 시작하는 같은 주소로 주소지를 기재해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회가 해당 주소지를 확인한 결과 좋은학교만들기학부모모임이란 단체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찬성자 이름에 ‘이완용’ ‘박정희’ ‘박근혜’ 등을 적거나 주소지에 ‘조선총독부’ ‘청와대’ 등을 적는 등 상식을 벗어난 의견서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의견 수렴 결과 반대가 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교육부는 A 전 학교정책실장과 B 교수, 좋은학교만들기학부모모임을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A 전 실장은 올바른 역사교과서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이유로 올 초 황조근정훈장(2등급)까지 받았지만 현재는 퇴직해 민간인 신분이라 위원회 차원의 조사는 불가능하다.

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기 위한 여론 조작의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며 “향후 수사 과정에서 교육부의 조직적 공모나 협력 여부, 여론 조작이 드러나면 관련자의 신분상 조치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국정교과서#박근혜 정부#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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