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 한숨 키우고… 막내린 역대 최장 추석 연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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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몸노인들엔… 더 외로운 열흘

추석 연휴 끝자락인 8일 부산 중구의 한 연립주택 단칸방에서 박모 씨(72·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혼자 살던 박 씨는 지병을 앓고 있었다. 박 씨는 이틀 전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평소 그를 돌보던 부산 중구노인복지관 소속 생활관리사 김모 씨는 너무 긴 연휴가 걱정돼 6일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박 씨는 받지 않았다.

이틀 뒤 김 씨는 불길한 생각이 떠나지 않아 박 씨 집으로 향했다. 신고를 받은 119대원이 먼저 현장에 도착했지만 박 씨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김 씨는 “할머니는 평소에도 복지관 직원 도움을 받아 바깥에 나오셨다”며 “긴 연휴에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먹는 것도 잘 챙기지 못하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가 최장 10일간 이어지면서 자녀와 해외로 여행을 다녀온 노년층도 많았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나 생활관리사의 보살핌을 받던 홀몸노인에게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힘든 추석이었다.

한모 씨(77)는 연휴 내내 서울 중구의 작은 집에서 홀로 지냈다. 평소에는 요양보호사와 생활관리사가 일주일에 2, 3차례 한 씨의 집을 찾는다. 그때마다 2시간가량 머물며 건강도 챙겨주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눈다. 하지만 연휴가 시작되며 발길이 끊겼다.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도 연휴 대부분 문을 닫아 한 씨가 갈 곳도 마땅찮았다. 오랫동안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혼자 살던 한 씨는 “작년엔 2, 3일만 버티면 됐는데 이번 연휴는 일주일 이상 혼자 지냈다”며 “그저 연휴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연휴로 인한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하자 일부 복지관은 직원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홀몸노인들을 직접 챙겼다. 9일 노원구어르신돌봄지원센터 생활관리사 정성미 씨는 이날 평소 돌보던 노인 10여 명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를 하러 온 양모 씨(70·여)는 “연휴 동안 찬물에 밥 말아서 김치 놓고 먹은 게 전부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고 말했다.

명절 때 자녀들이 부모가 있는 요양원을 찾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번처럼 긴 연휴에는 요양원 노인들의 외로움도 평소보다 더 크다.

경기 지역의 한 요양원 관계자는 “연휴가 아무리 길어도 자녀들은 대부분 한 번 와서 반나절 정도 있을 뿐”이라며 “외박이나 외출도 가능하지만 실제 모시고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한 생활관리사는 “혼자 사는 어르신 중에는 명절 연휴가 끝난 뒤 심한 우울증을 겪는 분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장애인 가족엔… 더 서러운 열흘

장모 씨(46·여)는 추석 연휴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 유정이(가명·18)와 서울 자택에서 단둘이 보냈다. 시댁이 있는 충북 청주엔 남편과 다른 두 자녀만 다녀왔다. 부부가 반쪽 귀성을 택한 이유는 유정이를 바라보는 친척의 차가운 시선에 있다. 지난해 친척 결혼식 때 시어머니에게서 “유정이를 가족행사에 데려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명절에도 가지 않는다. 유정이는 친할머니에게 안겨본 적이 없다.

장애인 자녀를 둔 일부 부모에게 열흘간의 추석 연휴는 너무 길었다. 부부 가운데 한 명만 고향에 가거나 아예 자녀를 시설에 맡겼다. 다른 친척의 시선이 두려워서다.

발달장애 1급인 7세 딸을 둔 엄마 한모 씨(38)는 “편한 마음으로 아이를 시댁이나 친정에 데려가는 부모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아이가 돌발행동을 할까봐 일가친척이 모이는 행사에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휴 때 서울시내 단기보호시설 37곳 중 3곳이 문을 열었다. 강모 씨(45·여)는 추석 전날과 당일 한 단기보호시설에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 현우(가명·16)를 맡겼다. 3년 전 설날 현우가 던진 장난감에 맞은 어린 조카 머리가 찢어진 뒤 명절 때마다 현우를 이렇게 시설에 맡기고 고향에 간다. 서울 성북구 행복플러스발달장애인센터 관계자는 “3주 전 ‘연휴 기간 시설 위탁 문의’ 글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지 30분 만에 신청자 20명이 모두 찼다”고 말했다.

일부 장애인은 가족이 있어도 보호시설을 벗어나 귀성하지 못한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4일 찾은 서울 중랑구 한 단기보호시설엔 장애인 5명이 명절을 지내고 있었다. 추석 당일이었음에도 평소처럼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를 듣고 종이접기를 했다. 이들 장애인은 모두 성인이다. 보호자가 사망하거나 연로해서 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다운증후군과 지적장애 1급인 김모 씨(24·여)는 ‘추석은 어떤 날이냐’는 질문에 “(시설) 선생님이 집에 간 날”이라며 웃었다. 지적장애 3급 이모 씨(37·여)에게 지난해 추석에는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대뜸 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길 꺼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땐 아빠 공장에 갔는데…. 감잣국도 끓여주고 밥도 다 하고 그랬어.” 이 씨는 할머니 사망 이후 시설로 왔다. 명절 때마다 외롭게 보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추석#연휴#소외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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