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 유례없는 국감 기형적 행태 되풀이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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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 대한 첫 국회 국정감사가 모레부터 시작된다. 출범 반년도 안 된 신생 정부로서 조각(組閣)도 마무리되지 않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비어있는 상태에서 열리는 국감이다. 벌써부터 여야는 한 치의 양보 없는 난타전을 예고했다. 어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국감을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를 청산하는 ‘적폐청산 국감’으로 명명했고, 자유한국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원조적폐와 문재인 정부의 신(新)적폐를 규명하겠다고 별렀다.

여야는 국감장 곳곳에서 ‘적폐 대결’을 벌일 것이다. 민주당은 전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 최순실 국정농단, 문화계 블랙리스트, 국가기관을 동원한 정치댓글 공작을 물고 늘어질 기세다. 이에 한국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뇌물수수 의혹 재수사 요구로 맞불을 놓으면서 문재인 정부의 인사 실패와 안보 무능을 공격할 작정이다. 여당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야당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을 각각 증인으로 불렀다. 예나 다름없이 기업인들도 무더기로 증인으로 채택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감이 여야의 거친 저질 공방과 기업 길들이기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구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국감철만 되면 국회는 무리한 증인 신청과 자료제출 요구, 한건주의 폭로, 막말과 호통으로 얼룩지면서 ‘국감 무용론’을 자초했다. 이번 국감도 이대로 흘러간다면 과거만 뒤지는 퇴행 국감, 신생 정부 발목잡기 국감이 되고 말았다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헌헌법 때 도입된 국감은 유신헌법으로 폐지됐다가 1987년 개헌으로 부활했다. 국회의 권능이 무시되거나 제한됐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정 전반을 감사하는 국감은 ‘국회의 꽃’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국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형적 제도다. 선진국에선 우리처럼 기한을 정해놓고 감사하는 일이 없다. 미국 의회에선 국감 대신 1년 내내 필요한 사안에 조사권을 발동해 청문회를 연다. 한국에도 국정조사 제도가 있는 만큼 굳이 국정 전반을 한 번에 몰아서 감사하는 국감이 필요하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국감은 사실상 마지막 국감이 될 수도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에는 연중무휴의 상시국회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언제든 필요한 현안에 대한 조사와 함께 청문회를 열 수 있다. 이번 국감만큼은 정부의 독선과 독주는 견제하되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 시각에서 엄정하게 따지고 대안을 모색하는 생산적 국감이 돼야 한다. 국감이 청산해야 할 ‘국회 적폐’로 낙인찍히고 만다면 국회로서도 치욕일 것이다.
#문재인#첫 국회 국정감사#적폐청산 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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