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조직과 관계 없어… 부유한 은퇴생활자의 ‘살인파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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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총격 참사]59명 사망… 美경찰, 단독범행 결론

미국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1일(현지 시간)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은 부유하고 단조로운 은퇴 생활에 염증이 난 성공한 백인 남성의 살인 파티였던 것으로 드러나 미국과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사회 주류에서 활동하던 은퇴자들이 사회에서 역할을 잃는 것에 대한 불만이나 박탈감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죄를 일으키는 ‘외로운 늑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티븐 패덕은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것 빼고는 특별한 사회활동이나 인간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고립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며 “참석자 중 백인이 다수인 행사에서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한 점을 고려할 때, 사회생활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이들의 다수가 백인이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찰은 58명을 죽이고 527명을 다치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범인 스티븐 패덕(64)이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조직과도 연관이 없으며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6일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경찰은 패덕의 범행 동기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명확한 목표 없이 발생했다는 점에 미국인들은 경악하고 있다. 패덕은 미국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IS 같은 테러집단과 관련이 없다. 미국으로 이민 와 어렵게 생활하고,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이민자 출신도 아니었다. 비(非)백인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인종주의자 역시 아니었다.

패덕의 화려한 경제·사회적 배경도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6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패덕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유한 삶을 누려왔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라스베이거스의 맨덜레이베이 리조트 카지노 호텔 등에서 한 번 판돈으로 100달러 이상을 거는 도박을 자주 즐겼을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패덕은 일명 ‘고래(whale)’로 불리는 거액 도박꾼은 아니었지만 카지노에서 별도의 게임룸이나 한 끼에 1000달러가 넘는 고급 생선초밥을 제공받는 정도의 ‘특별한 손님’으로 분류됐다. 패덕이 범행 장소로 활용한 스위트룸도 호텔 측으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은 것이었다. 또 패덕은 우울증이나 분노조절 장애 같은 정신병을 앓은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패덕은 올해 8월 시카고 도심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인 ‘룰라팔루자’ 기간에도 이틀간 각각 두 개의 방을 예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행사는 하루 10만 명까지 참석하는 행사로 시카고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다. 이에 따라 패덕이 시카고에서 총기 난사를 하는 것을 검토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패덕은 당시 방을 예약만 한 채 나타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모든 정황은 이번 사건이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노년층들이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폭력적 돌발행동임을 시사한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이뤄지고 있고, 총기도 쉽게 구입할 수 있어 ‘제2, 3의 패덕’이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총기 규제와 함께 은퇴자들의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라스베이거스 총격#참사#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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