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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블로그]추석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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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블로그]추석의 위기

임마누엘 패스트리치 미국출신·한국이름 이만열 경희대 교수입력 2017-10-03 03:00수정 2017-10-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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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임마누엘 패스트리치 미국출신·한국이름 이만열 경희대 교수
내가 추석을 처음 경험한 해는 1년간의 한국어 연수를 위해 한국에 온 1995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을 하며 정착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이번 추석은 내가 꼭 10번째 맞는 추석이다. 10년간 처가에서 맞는 추석은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아마 다른 가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변화를 감히 위기라 부를 수도 있겠다. 추석 명절이 다음 세대에도 의미를 가질지, 아니 존속 자체가 가능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장모님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추석 차례상에 올릴 과일과 음식을 준비하셨다. 차례상은 ‘주자가례’를 한국식으로 해석한 원칙에 따라 정성스레 차려졌다. 차례에는 가족들이 필사적으로 참석해 함께 조상을 기리고 존경을 표했다. 우리보다 앞선 시간을 살다 가고,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현재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 조상의 존재를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장모님은 꼼꼼하게 깎은 배와 밤, 곶감과 어포, 떡을 올린 제기를 상에 올리고 초에 불을 붙였다. 차례상은 음식을 소중히 아끼는 마음과 과거에 대한 경건한 기억이 조화롭게 합쳐진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다른 가족과 함께 차례상 앞에 앉아 향을 피워 돌아가신 조상에게 바쳤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유아독존의 개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든 전통의 일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소비문화가 맹위를 떨치면서 과거를 경건히 기억하며 의식의 범위를 확장하는 시간은 사라졌다. 추석은 상업적 마케팅 수단으로 퇴색해 갔다. 이제 장모님은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침 일찍 간략한 차례를 먼저 지내신다. 추석 문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조상에 대한 대화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경건한 묵념은 사라졌다.

이제 추석은 소비를 만끽하는 명절이다. 먹고 또 먹는 시간이 반복된다. 아이들은 TV를 보고, 어른들은 돌아서면 잊을 만한 소문이나 잡담을 생각나는 대로 나눈다. 우리를 만들어준 과거를 되짚지 않고 차례상에 올릴 음식, 심지어 서로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조상을 기리고 감사함을 느끼는 마음은 자취를 감췄다.

요즘에는 추석 때 아예 오지 않는 가족도 있다. 한때는 해외에 있는 가족까지도 반드시 참여해 ‘한 가족’임을 느끼는 중요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친구와의 약속, 심지어 학교 과제를 이유로 내세워 추석 때 아예 오지 않거나 잠깐 왔다 가곤 한다.

추석이란 명절 자체가 즉각적 만족과 순간적 소유를 만끽하는 자리로 변질됐다. 추석이 가진 본래 의미는 반대로 뒤집혔다. 우리보다 앞선 시간을 살아간 사람들, 그들이 이룬 가족에서 이어진 가닥들이 합쳐져 지금의 우리와 그 경험을 만들었음을, 우리가 그저 홀로 태어난 사람이 아님을 기억하는 자리는 더 이상 없다.


나는 추석 명절의 차례 의식을 좋아했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과 우리, 우리와 가족의 관계를 군더더기나 꾸밈 없이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가장 단순한 활동도 감사히 여기는 시간은 삶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중요한 쉼표가 되어 줬다.

추석을 되살리고 싶다면, 추석의 고유한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 소비할 것들로 가득 채운 차례상보다 의미를 살린 간략한 행동이 정신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짐을 깨달아야 한다.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아이들이 조상의 존재를 실제로 느끼고, 자신이 먼 과거로부터 이어진 위대한 존재의 사슬에 닿아 있음을 깨닫게 도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석에 자연의 순환을 느끼는 시간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 농사의 수확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산에서 자연을 즐기거나 농장에서 곡물과 채소를 구하며 세상의 섬세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자.

임마누엘 패스트리치 미국출신·한국이름 이만열 경희대 교수


#추석#추석 명절#추석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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