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막혀 운행 길어져도 배차간격 그대로… 명절 없는게 낫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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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운전대책 사각지대’ 고속버스 운전사들의 하소연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승차장에 있는 버스 안에서 한 운전사가 피곤한 듯 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다. 최장 열흘에 
이르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고속버스 운전사들은 ‘명절 운전’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승차장에 있는 버스 안에서 한 운전사가 피곤한 듯 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다. 최장 열흘에 이르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고속버스 운전사들은 ‘명절 운전’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번 물어봐봐. 명절 없어지면 좋겠다는 운전사가 99%야.”

박모 씨(47)의 말에 빙 둘러선 3, 4명이 “맞다, 맞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 씨는 경력 9년 차의 고속버스 운전사다.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승차장에서 만난 박 씨는 출발을 앞두고 동료들과 쉬고 있었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고속버스 운전사에게도 최장 열흘간의 연휴가 화제다. 하지만 이들은 즐거움보다 걱정과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피로와의 사투’ 탓이다.

보통 명절 연휴 때는 같은 목적지도 평소보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까지 더 걸린다. 물론 연휴가 길면 차량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긴 연휴는 고속버스 운전사들도 경험한 적이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서울과 경북을 오가는 경력 7년 차의 임모 씨(47)는 “긴 휴일에 고속도로 통행료도 공짜라 놀러가는 차량이 쏟아져 나올까 하는 걱정과 통행량이 분산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반반”이라고 말했다.

귀성·귀경 차량 때문에 도로가 막혀 운행시간이 늘어나도 휴식시간까지 늘어나는 건 아니다. 좁은 운전석 안에서 오래 있을수록 정해진 휴식시간은 줄어든다. 이날 승차장에서 만난 운전사 3명은 “명절에 고속도로가 막힌다고 정해진 배차 간격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모두 다른 버스회사 소속이다. 전주, 익산 등 전북지역을 운행하는 박 씨는 “평소 전주 가려면 3시간 운전해 2시간 쉬고 다시 올라오는 스케줄인데 명절 때는 내려가는 데만 4, 5시간 걸린다”며 “배차간격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못 쉬고 올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이나 전남 여수 등 장거리 노선 운전사들은 명절 때 6, 7시간 정도는 각오하고 운전대를 잡는다. 앞선 구간에서 사고라도 나면 8, 9시간 채우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단거리 노선도 예외는 아니다. 운행 횟수가 많기 때문이다. 보통 3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장거리 노선은 하루 1, 2회 운행하지만 단거리 노선은 4, 5회다. 최모 씨(43)는 “장거리 목적지는 가는 시간이 길어 고생하는 대신에 상대적으로 숨 돌릴 틈이 더 있는 편이다”라며 “단거리 노선은 운행 사이사이 휴식시간이 짧아 못 쉬고 운전할 때도 자주 있다”고 말했다.

도로가 막히고 운행시간이 길어지면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이때 승객들의 돌발행동은 자칫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명절 때는 술 취한 승객이 많아 고속버스 운전사들을 당황하게 한다. 장모 씨(54) 역시 명절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 술에 취한 채 버스에 탄 뒤 길이 막히자 “다른 길로 돌아가라”며 소리치고 짜증 내는 귀성객을 명절 때마다 1, 2명씩 겪는다. 장 씨는 “고향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조금 자제해야 한다”며 “말을 섞으면 싸움으로 번질까봐 항상 대답 없이 꾹 참는다”고 말했다.

피로가 쌓이면 찾아오는 것이 졸음이다. 지난해 7월과 올 5월 영동고속도로, 이달 초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각각 발생한 버스 추돌사고가 운전사들에게는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날 만난 운전사들은 “길이 막혀 운행 시간이 길어지면 승객들은 대부분 잠이 들어 버스 안이 조용하다”며 “한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운전하다가 어느 순간 잠이 온다”고 입을 모았다. 운전사 김모 씨(51)는 “고속버스 운전사는 그래도 졸음을 참는 데 베테랑이지만 요새 사고 나는 걸 보면 한순간인 것 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졸음을 참고 운전해 고속도로를 벗어나도 끝이 아니다. 터미널 승차장에 들어서기까지 도시마다 차량 정체가 심각한 탓이다. 김 씨는 “버스가 30분 넘게 터미널 주변을 돌 때도 있다. 규모가 작은 터미널은 더 힘들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주차와 청소를 마친 뒤 귀가한다. 하지만 명절 때는 무조건 집으로 갈 수 없다. 이른바 ‘임시 대기’ 탓이다. 수요가 급증해 정해진 버스가 승객을 다 태우지 못할 경우 상황에 따라 각 버스회사에 차례로 운행이 추가로 편성된다. 김 씨는 “보통 다음 날 쉬는 운전사들이 퇴근하지 못하고 회사 요청에 따라 기다린다”며 “너무 피곤하면 거절해도 상관없지만 회사 부탁을 대놓고 거절하는 직원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버스#운전기사#추석#명절#교통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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