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서 쫓겨난 배넌, 트럼프에 한방 먹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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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주 상원 보궐선거 경선… 배넌이 지지한 국수주의 후보
거액지원 공화당 주류측에 승리

자칭 ‘스트리트파이터(거리의 싸움꾼)’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국수주의 진영의 첫 백악관 밖 장외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12월로 예정된 앨라배마주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를 위한 공화당 경선에서 자신이 지지한 후보를 당선시킨 것.

배넌을 필두로 한 국수주의자들이 지원 유세에 나섰던 로이 무어 전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은 26일 경선에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주류’는 물론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직접 지원한 현역 상원의원 루서 스트레인지를 득표율 55% 대 45%로 꺾어 본선에 나서게 됐다. 이번 선거는 제프 세션스의 법무장관 발탁으로 발생한 공석으로 치러지게 됐다. 스트레인지는 주 법무장관으로 해당 공석을 잠시 맡은 상태다.


이번 경선은 국수주의파와 공화당 주류의 전면 대결 양상이었다. 무어는 각각 2003년과 올해 앨라배마주 법원에 있는 ‘십계명’ 석상을 철거하라는 연방항소법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동성부부의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주 대법원장 자리에서 두 번이나 쫓겨난 바 있는 강경보수 진영의 ‘투사’다. 무어를 국수주의파 대표 선수로 꼽은 배넌은 25일 유세에 등장해 “(스트레인지를 지원하고 있는 공화당 주류는) 미국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력한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자신의 슈퍼팩(대규모 정치자금 후원 조직)을 동원해 900만 달러(약 100억 원)를 TV 광고에 쏟아붓는 등 스트레인지 당선에 사활을 걸었으나 패배했다. 지원 유세에 나섰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머쓱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직접 유세에까지 나섰음에도 스트레인지의 당선을 이끌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트럼프 영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며 “굴욕적 한 방을 먹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에 끼칠 영향은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배넌이 무어 지지 유세에서 “우리는 이곳에 트럼프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칭송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고 말했듯이 트럼프 핵심 지지층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트위터에 “어젯밤 무어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는데 좋은 사내 같았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글을 써 패배를 시인했다.

배넌은 이번 승리로 “공무원 신분으로는 원하는 싸움을 걸 수 없었다”는 자신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26일엔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공화·테네시)이 정계 은퇴를 선언해 공화당 텃밭을 둘러싼 아웃사이더와 공화당 주류의 또 다른 충돌을 예고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배넌#트럼프#백악관#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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