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12>9·11 테러 후 美 관통하는 키워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7일 1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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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we learn nothing else from this tragedy, we learn that life is short and there is no time for hate (우리가 이런 비극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인생은 짧으니 다른 사람을 증오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 때 나온 말입니다. 운명의 그날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납치돼 워싱턴으로 향하다 펜실베이니아 벌판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조종사의 부인이 추모식에서 읽은 조사(弔辭) 중 일부분이죠.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도시의 사전)‘에는 9·11 추모사를 모아놓은 챕터가 있습니다.


미국은 얼마 전 9·11 테러 16주년을 맞았습니다. 미국은 9·11 테러 후 변했다고 합니다. 9·11 이전과 9·11 이후의 미국은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거죠. 9·11 이전에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저는 9·11 발생 10년 뒤인 2011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다시 미국에 갔습니다. 얼마나 미국은 달라졌을까.


제가 아는 미국인들은 타인에 대한 친절이 몸에 뱄고, 다른 사람의 일에 잘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처럼 치열한 경쟁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탓에 좀 어리숙하고 순진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 미국인들이 9·11테러를 계기로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바깥 세계에 대해 의심을 키우고 차별적인 인식을 갖게 된 거죠.

의심의 대상은 주로 이슬람 국가들과 미국 내 거주하는 이슬람 출신 이민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특파원 재직 당시 제가 살던 곳은 워싱턴 교외 알링턴이라는 곳입니다. 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할 만한 평온하고 경제수준 높은 백인 동네입니다. 그런데 알링턴 서쪽으로 가면 이슬람 이민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알링턴에 이슬람 집중 거주 지역이 생긴 건 유명한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있기 때문이죠. 이슬람교도들은 하루 종일 모스크에 머물며 기도하고 코란을 읽는 것을 최고의 종교 행위로 여깁니다. 9·11 이후 미국 내 이슬람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이 모스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동양 여성의 모스크 방문이 쉽지 않은지라 주변에 아는 중동 사람들을 총동원해 겨우 방문 허락을 받았습니다.

주변의 미국인들에게 모스크 방문을 자랑삼아 얘기했더니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거기를 왜 갔는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었죠. 그 모스크는 급진적인 이슬람 교리를 전파해 미 연방수사국(FBI)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곳이라는 겁니다. 알링턴 백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스크 이전 청원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스크 때문에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알링턴으로 모여 동네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뭐가 진실일까요. 제가 모스크에서 만난 이슬람교도들은 급진과는 거리가 먼 유순한 사람들이었죠.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미국 내에서 받는 차별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반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그 모스크는 요주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모스크의 이맘(성직자)은 반미 교리를 자주 설파해 미 정부의 조사까지 받았구요.

아마 진실은 중간 그 어디엔가 있겠죠. 확실한 건 9·11 이후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는 겁니다. 덕분에 미국 유학 생활 때 이슬람이라는 단어조차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제가 특파원 생활 때는 이슬람 관련 기사를 쓰는 것이 주요 일과가 됐다는 거죠.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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