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아이콘’이 인권탄압 외면… 두 얼굴의 아웅산 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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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 탄압’ 국제적 비난 확산

“내 마음속에 당신은 정의의 상징이었다. 최고위직에 오른 정치적 대가가 침묵이라면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최근 미얀마 실권자이자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에게 보내는 편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토벌 작전이 사실상 ‘인종청소’라는 국제적 비난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수지 여사가 이를 눈감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주민 40만여 명은 지난달 25일 시작된 정부군의 무자비한 토벌작전을 피해 방글라데시 쪽 국경을 넘었다. 전체 로힝야족(120만 명)의 3분의 1이 목숨을 건 국외 탈출을 감행한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3일 로힝야족이 거주하는 471개 마을 중 176개는 완전히 비었고 34개는 주민 일부만 남아 있는 등 40%가량이 초토화됐다고 전했다. 국경 지대에는 재입국을 막기 위해 지뢰를 매설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이드 빈 라아드 알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태를 예의 주시해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3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법질서를 재확립해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즉각적인 조치를 하도록 촉구한다”는 성명을 채택했다. 미얀마 정부를 두둔해온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했다. 신속한 사태 종결을 촉구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10명의 공개서한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국제적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수지 여사가 받은 노벨평화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에 이미 전 세계에서 4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그러나 수지 여사는 5일 터키 정상과의 통화에서 “로힝야족 사태 보도는 국가 간 분쟁을 촉발하고 테러리스트를 이롭게 하는 가짜 뉴스”라고 주장해 실망감을 더하고 있다. 로힝야족 무장단체가 먼저 경찰 초소를 습격했고 이에 반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민주화와 인권의 아이콘’으로 널리 알려진 수지 여사에게 국제사회가 배신당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독재정권하에서 수차례 투옥과 가택연금을 겪었던 수지 여사는 2015년 총선에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자녀와 남편이 영국 국적자인 이유로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국가자문역과 외교장관을 맡으며 실권자가 됐다. 하지만 로힝야족 토벌을 계기로 인종청소 논란의 중심에 서고 급기야 제재 대상으로 거론되는 처지가 됐다. ‘발칸의 도살자’라는 악명까지 얻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1992∼1996년 알바니아계 이슬람 주민 25만 명을 학살하면서 굳어진 반인륜적인 ‘인종청소’ 오명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수지 여사에게 따라붙고 있는 것이다.

수지 여사는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이번 주 뉴욕에서 개막하는 유엔총회 참석 일정을 취소했다. 19일로 예정된 수지 여사의 TV 방송연설이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는 135개 소수민족이 있다. 미얀마 정부는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로 취급한다. 재산권도 없고 언제든 살고 있는 토지가 몰수 가능하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주장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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