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포식자이고 누가 사냥감인가… 동물 통해 인간사 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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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5·끝>캐나다 작가 얀 마텔

얀 마텔은 기발한 설정에 핵심을 꿰뚫는 문장을 절묘하게 구사하며 이야기에 강한 힘을 불어넣는다. 그는 “소설의 운명은 절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작가정신 제공
얀 마텔은 기발한 설정에 핵심을 꿰뚫는 문장을 절묘하게 구사하며 이야기에 강한 힘을 불어넣는다. 그는 “소설의 운명은 절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작가정신 제공
《얀 마텔(54)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아버지가 스페인에서 유학할 때 살라망카에서 태어났다. 교수이자 외교관인 부모를 따라 포르투갈, 코스타리카, 미국, 프랑스 등에서 성장했고 캐나다로 돌아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마텔은 프랑스어가 더 익숙하지만 영어로 소설을 쓰는 캐나다 작가다.》
 

그는 동물을 통해 인간사를 우화적으로 비판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베아트리스와 버질’(2010년)에서는 원숭이와 당나귀를 등장시켜 나치즘을 비판하고 ‘포르투갈의 고산’(2016년)에서는 침팬지를 통해 20세기 인류 역사를 성찰했다. 두 작품은 단테를 천국과 지옥으로 인도한 베아트리스와 버질, 각각 아내와 사별한 박물관 직원과 부검병리학자, 정치인의 삶을 비추며 문명을 심도 있고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대표작 ‘파이 이야기’(사진)는 런던의 출판사 다섯 곳으로부터 거절당한 후 2001년 캐나다에서 출간됐고, 그 다음 해에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2012년 리안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휩쓸며 ‘파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파이…’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인도 소년과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던 중 배가 침몰하자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표류하다가 구조된 소년의 이야기를 그렸다.

프랑스 이름을 가진 인도 소년이 일본 배를 타고 캐나다로 항해하는 ‘파이…’의 일차적 주제는 다양성의 포용이다. 소년의 별명인 ‘파이(π)’는 영원히 계속되는 비결정 숫자다. 또 파이는 힌두교로부터는 믿음을, 기독교로부터는 사랑을, 이슬람교로부터는 형제애를 배운다. 파이는 “신앙이란 방이 많은 집과 같아서 하나의 방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배에서 프랑스 요리사는 채식주의자인 파이의 부모에게 채식 제공을 거부하며 “소도 풀만 먹으니까 소고기도 결국은 채소와 같다”며 억지를 부린다. 요리사는 “왜 한가지에만 집착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이 육식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실을 망각한다.

두 번째 주제는 나와 타자의 관계다. 배가 난파하자 파이는 호랑이와 같이 조그만 보트를 타고 표류한다. 처음에 파이는 호랑이를 두려워하지만 이 때문에 살아남으려 애쓰고 삶의 의욕도 느끼게 된다. 호랑이와 정이 들어 외로움도 극복한다. 파이는 호랑이에게도 선한 면이 있듯이 자신에게도 야수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가 포식자이고 누가 사냥감인지 구분이 어려워지는 것도 느낀다.

세 번째 주제는 절대적 진실의 부재다. 파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기 어렵다고 하자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해준다. 이유를 묻는 취재 작가에게 파이는 “어차피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듣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 순간 독자들은 비로소 파이가 끔찍한 사건을 차마 그대로 말할 수 없어 호랑이와 하이에나, 오랑우탄과 얼룩말을 상징으로 동원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파이와 호랑이가 잠시 머무는 섬 역시 낮에는 낙원이지만 밤에는 죽음의 섬으로 변하며 고정된 절대적 진실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이…’는 진실이 고통과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가르쳐준다. 자신을 절대적 진리와 정의라고 생각하는 순간 독선에 빠져 다양성을 상실하고 타자를 적대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서울대 명예교수
 

○ 얀 마텔은…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자라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했다. 성인이 된 후 이란, 터키, 인도 등을 여행하며 여러 경험을 쌓았다. 캐나다 트렌트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 네 편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집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1993년)로 데뷔했다. 하룻밤에 성(性)이 바뀐 젊은 소설가를 유쾌하게 그린 ‘셀프’도 선보였다. 매혹적인 이야기에 묵직한 주제를 담은 ‘파이 이야기’는 맨부커상 수상작으로는 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는 스티븐 하퍼 당시 캐나다 총리에게 책과 함께 보낸 101통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기법과 독창적인 발상,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작품을 쓰고 있다.
#박경리문학상#얀 마텔#파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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